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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과 황금별[원제 Le Roi des Aulnes] 본문
마왕과 황금별[원제 Le Roi des Aulnes]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과 황금별』은 <괴테>의 담시(譚詩) 『마왕』과 게르만 신화『요정들의 왕』을 바탕으로 환상소설과 전쟁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과 광기, 전쟁과 폭력의 밑바닥을 들여다본다. 이 소설은 1967년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으로 데뷔한 작가가 두 번째로 내놓은 작품으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투르니에는 1958년에 이 소설의 초고를 써 두었는데 이때 쓴 원고는 이 소설의 제1장인 ‘아벨 티포주의 불길한 기록'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후 1968년 본격적으로 다시 쓰기 시작하여 1970년 나머지를 완성 했는데 라인강의 비둘기들, 북방 낙토의 백성, 로민텐의 식인귀, 칼텐보른의 식인귀, 별을 짊어진 자 등 총 6장으로 이 소설은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문명과 원시, 신성과 세속, 소유와 희생, 역사와 신화라는 대립각의 상관관계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장을 통해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간다.
소설은 지독한 근시에 거구, 차량 정비공장을 운영하는 주인공 ‘아벨 티포주’의 다음과 같은 일기로 시작된다.
"1938년 1월 3일
'당신은 식인귀야' 라셸은 가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식인귀라고? 그러니까 내가 시간의 밤 속에서 떠오른다는 환상적인 괴물이란 말인가? 물론 나는 환상적인 내 기질을 믿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인적인 모험을 사물의운행과 심오하게 결합시키고 또 그런 방향으로 기울이게 하는 은밀한 공모를 믿는다는 것이다."
티포주는 기숙사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며 그에게 기호 해석을 알려주던 주술적 마력을 가진, 수수께끼 같은 친구 ‘네스토르’를 떠올린다. 이 둘 간의 관계와 대화는 소설 전반에 걸쳐 큰 틀로 작용하는데 네스트로가 티포주에게 알려준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는 이 소설에게 전이와 변용을 거치게 되지만 중심축으로서 기능한다. 성 크리스포트는 쉽게 말하자면 악당 짓을 하다가 예수를 알게 되고 자신을 희생하여 의를 이룬 사람이다. 친구 네스트로는 왕따인 티포주를 무등 태우며 성 크리스포트식 '짊어지기'의 의미를 인식한다. 그런 마력을 지닌 네스토르는 티포주를 사로잡고 있었지만 학교에 난 불 때문에 죽음을 맞는다. 네스토르의 죽음 후, 티포주는 자신을 네스토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그 후 어린이들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사진을 찍는 취미를 가진 고독한 티포주는 어느 날 소녀를 폭행한 혐의를 뒤집어쓰고 구속되었다가 전쟁터에서 실수를 만회하라는 조건으로 석방된다. 바야흐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티포주는 비둘기 사육병이 되었다가 독일군에 잡혀 포로가 되어, 괴링 소유의 로민텐 보호 구역으로 보내진다. 로민텐 보호 구역에서 사슴을 사냥하고 사자와 함께 고기를 나누어 먹는 괴링의 모습을 보며 티포주는 자신에게도 식인귀의 본질이 있음을 느끼면서 태곳적 세계를 향해 여행을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아벨 티포주가 몰두하는 어린이, 식인귀, 고라니, 비둘기, 캐나다, 사슴은 각각 의미와 상징을 지니며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끈다. 그러면서 티포주는 국립경찰학교에서 나치의 인종주의자들이 요구하는 아이들을 데려오는 인간사냥꾼이 된다. 결국 칼텐보른의 식인귀가 된 것이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
이 소설에 있어서 사건의 진행과 공간의 변화는 역사적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중형이 예상되는 티포주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거나 비둘기 사육병에서 포로수용소로 옮겨진다거나 포로 신분에서 칼텐보른의 모집담당관이 된다거나 하는 이 일련의 사건 전개가 그렇다. 하지만 티포주는 이것이 전부 상징적인 작용에 의한 운명의 전이라고 생각한다. 티포주가 가진 성향 중의 하나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건들이나 현상을 계시나 상징, 기호로 읽는다는 점이다. 티포주는 진흙 속에서 수천 년을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으며 시간과 함께 존재해온 미라의 존재에 존경을 품는다. 이 마왕의 모습은 결국 소설 끝 부문에서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로민텐 숲속의 아지트 '캐나다'가 아우슈비츠의 보물창고 '캐나다'로 의미가 전복되는 것 역시 그렇다.
<괴테의 '마왕' 일러스트>
이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은 이중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사건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성이 신화에 영향을 받은 상징이다. 두 번 째는 소설 속에서 모든 사건들이 다음에 올 사건들에 대한 계시이며 또 다른 상징적 복선이 된다. 티포주의 날것에 대한 애착은 변용된 상징으로 오발사고로 죽은 어린아이의 사체에 대한 애정으로 전이된다. 또 정비공장 시절 어린아이에 대한 애착은 나폴라의 집단 숙소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소년대원들에 대한 응시나 아이들과의 목욕을 통한 정화과정으로 바뀐다. 나치즘에 간접적인 조응자로써 티포주의 정화과정은 에프라임이라는 한 소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소년은 유대인으로 성경에 의한 예언적 힘을 믿는다. 티포주는 이탄지의 마왕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짊어지는'행위의 종착역이 거의 다 이르렀음을 안다. 소련군의 공격이 이어지고 티포주는 소년의 순진함이 피로 얼룩진 세상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라 믿으며 갈대숲의 마왕처럼 아이를 짊어진다. 소설 속 티포주의 삶은 이 정화과정을 통해 예언이 현실화되는 자기 충족성을 얻게 된다.
이 소설이 단지 신화의 재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소설의 양상을 띠는 것은 신화와 상징을 통한 파시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로민테른의 숲속에서 칼테보른의 나폴라의 소년교육대까지 나치즘이 사회에 갖는 식인귀적인 속성이 상징적인 은유를 통해 드러난다.
미셸 투르니에 (Michel Tournier)
1924년 파리 9구 빅투아르 가에서 태어났다. 파스퇴르 고등학교 시절의 스승인 모리스 드 강디약 교수의 철학 강의에 깊은 영향을 받고 소르본 대학교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등과 함께 가스통 바슐라르, 장폴 사르트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철학을 전공했다. 이어 독일 튀빙겐 대학교에서 철학을 연구한 후 교수가 되려 했으나 자격시험에 실패하고, 출판사인 플롱 社에 입사하여 문학 부장을 역임하면서 독일 문학 번역에 몰두했다.
1967년, 43세 되던 해에 발표한 처녀작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했으며, 두 번째 작품인『마왕』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공쿠르상'을 받는 영광을 안겨 주었다. 1972년 이래로 아카데미 공쿠르 종신 심사위원을 맡고 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다. 1962년부터 파리 근교의 생 레미 슈부르즈 근처에 있는 슈아젤이라는 작은 마을의 옛 사제관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마그리트 유르스나르>, <파트릭 모디아노>, <르 클레지오> 등과 더불어 현대 프랑스 문단의 가장 뛰어난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작품 세계는 신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현대 사회의 여러 면모를 재조명하고 재해석한다는 면에서 볼 때 매우 철학적이자 종교적이며, 잘 알려진 신화와 전설 따위를 토대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에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을 더한 현대의 우화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볼 때 매우 동화적이자 악마주의적이다.
작품으로는 『동방박사와 헤로데 대왕』, 『메테오르』, 『성령의 바람』, 『방드르디, 원시의 삶』, 『뇌조』, 『움직이지 않는 떠돌이』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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