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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마을(Pardonnez nos offenses) 본문
13번째 마을
[원제 : Pardonnez nos offenses(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책의 내용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수도사와 그의 제자가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렸다’라고 설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하!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이야기하려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모날디>를 읽은 독자들은 『임프리마투르』라는 책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사실 2002년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을 때 많은 비평가들이 이 책의 작가를 두고 ‘프랑스의 젊은 움베르토 에코’라고 평하기도 했다하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놀랄 일도 아니다.
<로맹 사르두>의 미스터리 장편소설인 『13번째 마을』은 중세 유럽의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젊은 신부와 그 일행의 모험을 토대로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의 변화상과 맹목적 믿음, 그리고 정치적 이권 다툼으로 얼룩진 기독교의 실상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1284년 겨울, 툴루즈의 작은 마을 '드라강'에서 그 마을의 주교인 ‘아캥’ 수도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문객으로부터 잔인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몽타유 강에서 조각조각 잘린 세 구의 시체가 발견된 지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이 사건은 그 마을을 엄청난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간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한 젊은이가 눈길을 헤치고 이 마을로 찾아든다. 사망한 아캥 주교의 요청으로 드라강에서도 말을 타고 꼬박 사흘이 걸리는 13번째 소교구로 부임하게 된 신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젊은이는 ‘에노 기’ 신부. 그의 출현과 함께 마을 사람들은 또 다시 불안에 휩싸인다. 신부가 말한 13번째 마을은 흑사병으로 마을 전체가 몰살당한 이래로 50년간 소식조차 끊긴 곳으로 늑대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외르트루’ 마을이기 때문이다.
창백한 얼굴과 신비한 지식을 지닌 거구의 하인과 금발의 어린 제자를 대동하고 외르트루로 향한 신부는 그곳에서 뜻밖에도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마을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는 음모의 냄새를 진하게 맡는다. 외딴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미로 같은 마을 구조와 이교의 의식, 성서의 구절이 적힌 낡은 양피지, 뒤틀린 언어, 짐승과도 같은 복장……. 이들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이며 하느님의 손길이 떠난 지난 반세기 동안 13번째 마을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한편 주교의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기 위해 파리로 떠난 마을의 보좌 신부 쉬케는 뜻하지 않게 알 수 없는 적으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며 자기도 모르게 바티칸의 거대한 음모에 휘말리게 된다. 쉬케는 적막한 시골 교구의 보잘 것 없는 주교라고 생각했던 스승의 과거에 무언가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손에 땀을 쥘 정도로 숨막히게 전개되는 사건, 생생하고 역동적인 장면 구성 및 전환으로 독자들의 가독성을 한층 높인다.
『13번째 마을』의 원제『 Pardonnez nos offenses(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작품 속에서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아캥 주교의 묘비명이기도 하다.
<로맹 사르두Romain Sardou>는 1974년 파리 블로뉴-빌랑쿠르에서 4대에 걸쳐 프랑스 문화 예술계를 주도하는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해 온 사르두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사랑이라는 병』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국민 가수 미셸 사르두가 그의 아버지이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화배우 알랭 들롱이 그의 대부(代父)이다. 10세 때 이미 바그너의 작품에 필적할 만한 오페라 대본을 쓰겠다는 야심 찬 꿈을 꾸었던 로맹 사르두는 제도권 교육 내에서는 작가가 되려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자퇴를 결심한다. 그 후 철저한 자기개발과 자료 수집, 폭 넓은 독서를 통해 작가로서의 역량을 착실히 키워나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한다. 이때 사르두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는데 그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2005년 자신의 두 아이를 위한 동화 『크리스마스 1초 전』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본격적인 문학 작품을 쓰겠다고 결심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뒤 발표한 처녀작 『13번째 마을』은 단숨에 프랑스 내 30만 부 판매, 전 세계 10개국에 번역 소개되는 등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르두의 다른 작품으로는 십자군 전쟁 시대를 배경으로 중세와 미래를 오가는 주인공의 모험을 담은 독특한 형식의 추리 소설 『신의 목소리(L'eclat de Dieu)』(2004)와 빈민가 출신의 아이가 우여곡절 끝에 산타 할아버지가 된다고 하는 환상적인 이야기 『크리스마스 1초 전(Une seconde avant Noel)』(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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