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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르타의 태양[Le Soleil des Scorta] 본문

프랑스문학

스코르타의 태양[Le Soleil des Scorta]

[책갈피] 2006. 10. 11. 16:17

 

스코르타의 태양(Le Soleil des Scorta)



 <G.G. 마르케스> 가 나이 39세 때인 1967년에 발표한 『백년 동안의 고독』은 그를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며 훗날(1982년) 노벨문학상이라는 명예를 안겨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시간의 도저한 수레바퀴 속에서 소멸해가는 ‘마콘도’라는 가공적인 땅을 무대로 5대에 이르는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 그리고 원시사회인 마콘도의 번영과 몰락이 축을 이루고 있다. 마콘도를 개척하고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호기심으로 인해 숱한 발명과 모험의 끝에 결국은 미쳐버리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그의 아들이면서 잡히지 않는 이상을 위해 32번이나 전쟁에 참가해서 모두 패배하고 전쟁과 권력이 주는 허망함 속에 결국 마콘도로 돌아와 황금물고기나 만들며 남은 생을 보내게 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집안의 묵묵히 지키며 살아가다 결국 눈이 멀었음에도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살아가는 우르슬라. 그리고 집안의 자손들이 겪는 고통과 욕망……

작가가 보여주는 100년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인물들은 자신 안의 이상 속에서 살다 미쳐버린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처럼 자신의 세계에 갇혀진 고독한 인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자손들의 이름을 똑같이 짓게 되는데 이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로부터 시작된 고독은 이름이 계속 똑같이 이어지듯이 자손들 또한 그 고독을 계속 이어받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로랑 고데(34)>에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스코르타의 태양』은 이탈리아 남부를 무대로 ‘스코르타’ 가문의 5대에 걸친 가족사를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가족 안에 존재하고 있는 거짓과 비밀, 그리고 인간적 진실을 진지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소설은 스코르타 일가의 비밀이 각자의 운명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 스코르타 가문의 사람들은 과거의 무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스코르타 가문의 사람들은 비밀이라는 창(窓)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한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어머니에서 딸로, 삼촌에서 조카로, 고모에서 조카딸로 그들만의 삶의 지혜가 전수된다.

소설의 주무대는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지도에서 장화 뒷꿈치에 해당하는 폴리아 지방의 ‘몬테푸치오’이다.

 


[소설의 맨 처음]

“뙤약볕에 땅이 쩍쩍 갈라지는 듯했다. 바람이라도 한 점 불면 올리브나무들이나마 살랑이련만, 도대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언덕의 향기도 사그라진지 오래였다. 돌덩이들은 고열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팔월의 태양이 가르가노 고원을 짓누르고 있었다. 왕처럼 당당하게.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으리라. 언젠가 이 땅에도 비가 내렸다는 것을. 그 빗물이 밭이며 올리브나무를 촉촉이 적셔주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으리라. 이 메마른 하늘 아래, 동물에게든 식물에게든 양분이 되어줄 만한 뭔가가 존재했다는 것을.  때는 오후 두 시, 땅은 화형에 처해지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 외딴 마을 몬테푸치오에 당나귀를 타고 나타난 사나이. 15년간의 수감 생활에서 돌아온 루치아노 마스칼쪼네는 마을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비스코티 집의 문을 두드리고 문을 연 여인은 아무 저항없이 그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15년이나 그리워했던 필로메나 비스콘티를 한번만 안아볼 수 있다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산적’ 루치아노 마스칼쪼네는 비스콘티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마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는다. 그는 숨을 거두기 직전에, 그가 껴안았던 처녀가 원래 사랑했던 여자와 똑같이 생긴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운명에 침을 뱉으며 눈을 감는다. 그런데 그가 죽기 두 시간 전 사랑을 나눈 처녀의 뱃 속에는 이미 그가 뿌린 씨가 들어있었다. 그래서 ‘시체와 노처녀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가 등장하지만, 산모는 곧 세상을 뜬다.

고아가 된 패륜아 산적의 아들 로코를 마을사람들은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돈 조르지오 신부는 마을사람들을 꾸짖고 아기를 옆 마을에 사는 어부들에게 데려가 키워달라고 맡긴다. 로코는 친아버지와 자기를 키워준 양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로코 스코르타 마스칼쪼네’라는 이름을 갖게된다.

그 아이는 자라서 ‘로코 스코르타 마스칼조네’란 악당이 된다. 로코는 그 아비보다 더 무서운 강도가 돼 돈을 긁어 모은다. 벙어리 여인과 결혼해 두 아들과 딸도 낳는다. 그는 어느날 신부를 찾아가 온 재산을 성당에 헌납하면서 자식들에게 한 푼도 남겨주지 않은 채 세상을 뜬다. 로코의 자식들은 그런 운명을 저주처럼 받아들이면서, 그 무게를 견디며 자라 어른이 되는 것이 이 소설의 진짜 시작이다.

 

 

이 소설은 작렬하는 태양 아래 말라가는 토마토의 향기와 비릿한 고기잡이 배의 냄새가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외딴 남부 이태리 마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시적이고 아름답다.  또, 세월이 흐름에 따라 동네 성당의 신부가 바뀌고 그에 따라 민심도 달라지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대단히 이태리적이며 무시당하고 따돌림을 받지만 결국은 일가를 이루어내는 스코르타 사람들의 지중해 사람들 특유의 끈끈한 가족 관계와 우애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매우 인간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가혹한 운명에 맞서 싸우는 스코르타 가문 사람들의 인간미 넘치는 삶을 통해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그는 올리브가 하나의 열매가 다른 열매로 끊임없이 이어져 태양 아래서 영원히 시들지 않듯 인간의 삶도 인류 전체의 삶을 통해 영속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람에 실려 날아가 버리는 담배연기처럼 한 인간의 삶은 영원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인간의 삶은 계속 이어져 간다. 그러니 영원한 삶이란 거짓인 동시에 또한 진실이기도 한 것이다.


[소설의 맨 끝]

“올리브는 영원하다네. 열매 하나하나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말일세. 익은 걸 그대로 놔두면 썩어버리지. 하지만 올리브라는 것 자체는 한 열매에서 다른 열매로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어져 가네. 한 해 한 해 그 긴 생명의 사슬을 계속 이어간단 말일세. 똑같이 태양을 먹고 자라서 똑같은 모양과 색과 맛을 지닌 올리브 열매가 되지. 암, 올리브는 영원하다네. 인간도 마찬가지야. 죽고 사는 일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며 인류라는 긴 사슬이 이어져가지. 머잖아 난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그렇게 해서 한 인생은 끝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계속 살아나가겠지.”


[로랑 고데]

1972년에 태어났다. 연극학 전공자로서 집필과 연구를 병행하며 「레탕모데른」, 「알테르나티브테아트랄」등의 문학지에 글을 발표했다. 악트 쉬드 출판사에서『악마 들린 자들의 전투』,『광폭한 오니소스』,『쏟아지는 재』등의 희곡을 발표하며 유명 극작가의 대열에 들어섰다.  학업을 중단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후로는 창작 영역을 소설로 확장하여,『절규』,『송고르 왕의 죽음』,『스코르타의 태양』등을 발표했다.  2002년에 소설『송고르 왕의 죽음』으로 고등학생들이 뽑는 공쿠르 상(공쿠르 데 리세앙)을 수상하고, 2004년『스코르타의 태양』으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