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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연습
<조정래>의 신작 『인간 연습』은 분단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당해 온 한 개인의 시각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는 소설로 과거의 이념에 대한 치열한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사회주의의 몰락, 이념형 인간의 종말과 거듭나기,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의 가능성까지 매우 폭넓게 아우르면서 그 동안 우리가 언뜻 잊고 있던 저 ‘분단시대’의 덫과 함정을 일깨우고 그 덫과 함정 속으로 우리를 몰아 넣으며 ‘인간연습’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간첩으로 남파 즉시 믿었던 친구의 신고로 체포되어 30년간의 감옥살이 끝에 강제 전향을 당하고 이제 노인이 되어버린 장기수 출신의 ‘윤혁’이 그와 이념적 동지이자 그 역시 강제 전향을 당했던 장기수 박동건의 부음을 접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박동건은 가족과 섞이지 못하고 갈등을 겪으며 살아오다 죽기 전에 ‘사상의 조국’인 소련의 허망한 몰락과 주체 조국인 북한마저 인민들이 굶주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 사실을 알고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빠지다 끝내 목숨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윤혁 역시 사상적 동지의 죽음으로 인한 회한과 과거의 악몽에 시달리면서 평생을 바쳐온 이상이 자취 없이 사라져버린 상황 속에서 참담한 패배와 비참한 일생의 허무를 느끼며 자신의 삶이 허망하다는 회오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윤혁은 감옥에서 만난 운동권 출신의 강민규와 교류하고, 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치다 들킨 경희 남매를 구해준 인연으로 이 아이들과 자주 만나며 삶의 새로운 활기를 얻는다.
아이들과 만남을 통해 윤혁은 이들로부터 희망의 싹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사회 현실 속에서 시민운동을 계획하는 강민규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주의의 몰락에 대한 올바른 판단과 새로운 삶의 계기를 찾아간다.
체제가 만들어낸 중간인이자 체제의 주변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윤혁과 박동건의 삶은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할 과제로 시대와 이념의 희생자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적인 의미로 볼 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냉전의 유물이 여전히 사회와 정치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 1990년대를 기점으로 이념과 사상의 대립과 갈등은 상당히 약화된 게 사실이다.
『인간 연습』은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이념이 결국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고 인간을 파괴하는 현상을 보여주며 이념 갈등의 무가치성을 간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소설을 통해 작가는 우리시대의 이데올로기 집착이 가져오는 사회적 갈등과 민족의 갈등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결국 우리 사회와 민족을 비극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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