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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 문 학

열하광인[熱河狂人]

[책갈피] 2007. 10. 30. 13:20
 

열하광인[熱河狂人]



열하일기, 그리고  문체반정……


문체반정(文體反正)은 정조(正祖) 년간에 일어난, 한문의 문장 체제를 순정고문(醇正古文)으로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조선 후기는 봉건사회가 해체되면서 여러 변화를 겪게 된다. 농촌사회가 분화되고 상공업과 도시가 발달했으며 민중들의 의식도 변화했다. 이때 박지원을 비롯한 당시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고금(古今)의 치세(治世)와 난세(亂世)의 원인, 제도개혁, 농공업의 진흥, 화식(貨殖) 등 사회경제적인 개혁방안을 토론했고, 중국여행 체험을 글로 써서 돌려보기도 했다. 홍대용·이덕무·박제가·유득공·이서구·정철조 등이 박지원의 집에 모여 밤을 새워 당시 현실 문제를 논의하고 학문적·문학적 교류를 함께 했다. 그들이 특히 흥미를 가졌던 것은 청나라 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읽는 것이었다.  그중 『열하일기(熱河日記)』는 다채로운 표현양식과 독특한 문체를 구사해 당시의 화제작이었다.  총 26권 10책으로 된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1780(정조4)년 6월24일부터 10월27일까지 사신 종형(從兄) 박명원의 수행원으로 청나라 황제 고종의 만수절(萬壽節)을 진하하기 위해 연경, 열하 등지에 가서 4개월간 돌아보며 그곳의 문물제도를 보고 기록한 견문기로, 경치나 풍물을 단순히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 중국의 신문물과 실학사상을 소개한 저작으로 책이 완성되기도 전에 선비들이 돌려가며 읽었을 정도로 화제와 충격을 몰고 온 문제작이었다.

 

 

[열하일기]

 

박지원의 문체는 독특해 연암체(燕巖體)라고 불렸다. 연암체의 특징은 소설식 문체와 해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 고문에 구애되지 않고, 소위 ‘패사소품체(稗史小品體)’라고 불리던 소설식의 표현방법을 과감히 도입해 쓰고 현실의 생동하는 모습을 묘사했으며 시어(詩語)의 사용이나 고답적(高踏的)인 용사(用事)는 쓰지 않았다.

이에 정조(正祖)를 비롯한 보수파가 이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 바로 문체반정 운동이다. 정조는 문체의 흥망성쇠는 정치현실과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세도(世道)를 반영한 글을 읽으면 당시 정치의 득실(得失)을 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즉 문학은 도(道)를 실어 나르는 도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조는 당시의 문체가 위미(萎靡)하여 근심스럽다고 하면서 문체 문제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정조는 육경(六經)을 진짜 고문(古文)이라고 하면서 그 정신을 이어받아 전아(典雅)한 고문으로 글을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조는 연암 일파의 문체를 못마땅히 여기고 문풍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문화정책을 펼쳤다.

규장각(奎章閣)을 설치해 각신(閣臣)에게 당시의 문운(文運)을 진작시키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했고 주자서(朱子書)를 비롯해 학문과 문학에 본보기가 될 만한 책들을 간행하는 한편 명청의 문집과 잡서(雜書) 그리고 패관소설의 국내 유입을 금했으며 『열하일기』를 금서로 규정했다. 또 문체가 불순한 자는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했고 남공철·이상황·김조순 등을 문체 불순으로 문책했으며 자송문(自訟文)을 지어 바치도록 했다. 이 문화정책은 당시의 전통적인 순정(純正) 문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치세(治世)의 문학을 꽃피우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를 했지만, 당시의 변화하는 현실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정조의 문체반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패사소품체는 더욱 확산되어, 소설적 문체와 사실주의적 표현기법의 작품이 계속 인기를 끌게 되었다. 문체반정은 당시 사상의 발전과 문인들의 창작활동을 억압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띤 것으로, 시대의 흐름을 되돌리려 한 문화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김탁환>교수가 쓴 소설 『열하광인』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백탑파 그 세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방각본 살인사건(2003년)’,  ‘열녀문의 비밀(2005년)’에 이은 ‘백탑파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금서『열하일기』를 둘러싼 연쇄 살인과 암투의 비밀을 파헤친다.  ‘백탑파’는 흔히 북학파로 불리는 영·정조 시대 지식인 그룹으로 종로통 원각사의 십층석탑 아래서 자주 모였다 해서 붙은 별칭이다.


정조가 문체 반정을 일으킨 1792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는 시작된다.  정조가 『열하일기』를 금서로 묶은 지 5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열하일기』를 읽기만 해도 패가망신할 수 있는 삼엄한 상황 속에서 비밀리에 모여 『열하일기』를 읽는 모임 '열하광'의 일원이 무장 괴한들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무장 괴한들의 뒤에 절대 군주를 꿈꾸는 정조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백탑파를 사사건건 견제해 온 노론 세력이 있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히 백탑 서생에게 불만을 품은 자의 소행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열하광' 일원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그 와중에 왕실 종친이며 ‘열하광’의 일원이자 의금부 도사인 이명방은 정조로부터 “열하를 읽은 자들을 잡아들이라”는 밀지를 받는다. 정조의 밀서를 안의현에 있는 박지원에게 전달하고 부여의 박제가에게 들렀다가 한양으로 돌아온 이명방은 며칠 전 걸승 덕천이 자신의 표창에 찔려 살해당했음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범행 현장인 북한산에서 이명방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나타난다.

졸지에 의금부에 쫓기는 신세가 된 이명방은 감기가 든 이덕무가 걱정되어 청심환을 사 들고 몰래 병문안을 간다. 그러나 다음 날 이덕무는 독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이명방은 꼼짝없이 살인 누명을 쓴다. 이명방은 결백을 밝히고자 동분서주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불리한 증거만 나타나는데……

 


 

 

소설의 표면에는 살인과 범인추적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흐르지만 그 이면에는 ‘개혁의 최대 후원자에서 돌연 개혁의 탄압자로 변신한 정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작가의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전작 ‘방각본 살인사건’과 ‘열녀문의 비밀’은 정조가 개혁적인 실학파를 등용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작품은 이들이 거꾸로 정조에게 내침을 당하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왕은 누구의 편도 아닌 왕 자신의 편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작가는 정조와 박지원 일파에 대해 “오랫동안 한 몸인 듯 했으나 결국 다른 미래를 꿈꾸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하며,  “지금은 정조 시기가 유난히 각광 받고 있지만 어두운 부분도 분명 존재했다.  정조 시기를 무조건 우상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문체반정은 정조와 북학파의 개혁 방향이 서로 충돌했던 결과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또 “혁신이라는 기치를 반성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으며,  수구와 혁신에서의 양자택일은 이미 낡은 도덕적 틀일 뿐, 이제는 누군가를 위한 혁신인가를 더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분은 개혁의 기치를 들고 시작한 현 정권의 정책실패를 의식하고 한 말 같은 데, 정말 수구와 혁신에서의 양자택일은 이미 낡은 도덕적 틀로 전락하고 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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