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원제 : Enduring love]
자끄 라캉의 스승이기도 했던 프랑스의 심리학자 <G. G. 드 클레랑보>박사가 1942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드 클레랑보 신드롬(de Clerambault's syndrome)은 타인과 사랑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망상적 확신을 말하는데, 타인은 사회적 신분이 월등히 놓은 사람으로, 환자는 그가 먼저 사랑에 빠졌고 먼저 구애를 했다고 확신하며,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사랑한다는 망상의 대상은 불변하다는 데 특징이 있다.
환자는 대상이 표명하는 무관심과 혐오를 역설이나 모순으로 생각하고, 그가 ‘실제로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에서 흔들림이 없다. 이 병은 발병 시점이 명확하고 폭발적이라는 데서 다른 편집증적 성애-스토커 등-와 구분된다. 환자는 망상의 대상과 거의 접촉이 없었거나 아예 만난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 드 클레랑보 신드롬은 '가장 지속적인 사랑의 한 형태이며, 흔히 환자가 죽어야만 끝이 나는 사랑'이다.
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가장 유명한 환자의 예는 53세의 프랑스 여성으로, 그녀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영국왕 조지 5세를 사랑하여, 왕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망상을 갖고, 수 차례 영국으로 건너가 버킹엄 궁전 밖에서 왕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그의 사랑을 구했다.
<이언 매큐언>의 『이런 사랑』은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묘한 사랑병을 그 기제로 차용해 과학과 사랑과 강박관념의 충돌을 절묘하게 짜인 이야기 속에 담아낸 작품으로, 특히 심리 묘사가 빼어난 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사회가 가치를 부여하는 도덕성이 작은 위기 앞에서도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뛰어난 플롯과 심리 묘사로 출간 당시 뉴욕 타임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話者이자 주인공인 조 로즈는 과학기사를 쓰는 중년의 저술가다. 그는 7년 동안 사귀어오던 애인 클라리사와 함께 런던 근교의 한적한 시골에서 피크닉을 즐기던 중 갑자기 한 남자의 비명소리를 듣게 된다. 헬륨 풍선 기구가 아이를 태운 채 강풍에 휩쓸린 것이다. 비명 소리를 듣고 근처에서 모여든 조를 포함한 다섯 남자들은 가까스로 바구니에 매달려 풍선을 붙잡는다. 하지만 돌풍이 다시 휘몰아치며 순식간에 풍선이 공중에 떠오르며 줄을 잡은 다섯 사람도 덩달아 공중에 떠오른다. 기구가 더 높이 오르기 전에 줄을 놓으면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국 힘이 빠져 추락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어느 순간 한 남자가 줄을 놓고 떨어지고 풍선은 조금 더 치솟는다. 이윽고 조와 다른 남자들도 우수수 줄을 놓아버린다. 그런데 존 로건이란 사람만이 줄을 놓지 않아 300미터 상공까지 치솟다 결국 떨어져 죽게 된다.
조는 추락한 시신이 있는 장소까지 그를 따라온 28세의 청년 제드 패리를 처음으로 알게 된다. 제드는 이때부터 조의 삶에 불쑥 끼어든다. 제드는 주인공이 첫 만남부터 자신을 사랑하게 돼 자신만 알 수 있는 신호를 보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후 그는 조에게 끊임없이 구애를 시작한다. 자동응답기에 스물 아홉 개의 메시지를 남기고, 집밖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고, 가는 곳마다 미행하고, 장문의 연애편지를 계속해서 보낸다. 하지만 보답 받지 못한 사랑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듯 작가는 각각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세계를 상징하는 두 인물을 통해 밝은 사랑과 왜곡된 사랑의 충돌, 오해와 이해의 충돌을 그려나간다.
이 작품은 평범한 사람을 미치기 직전의 상태까지, 그리고 살인 직전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기묘한 사건과 그에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 인생이 한순간에 어떻게 변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을 독자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작가는 그 자신이 말했듯이 인물들의 무의식 세계, 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구조와 무의식 세계가 일으키는 갈등,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 사이에 나타나는 괴리 현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과연 영원한 사랑은 있는가? 신은 있는가? 과학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람은 도덕적 선택을 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이기적 선택을 하는 존재인가?
이 소설은 이와 같은 의문을 품은 채 사랑과 강박, 과학과 종교, 이성과 광기를 충돌시킨다. 이렇듯 심오한 주제들을 던져놓는 저자는 도덕성의 가치에 무게를 두기보다 도덕성의 허울과 연약함을 고발하며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무의식 세계 탐구의 정점을 이 책에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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