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스무어 [Hawksmoor]
영국의 작가 <피터 애크로이드>는 런던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작가로 런던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출간했으며, 그의 글은 대부분 런던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런던의 역사 London: The Biograph』는 이름 그대로 런던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기술한 저서이며 『런던 도해 Illustrated London』와 『성스러운 템스 강 The Thames』도 런던의 풍경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런던 어느 특정 지역의 고유한 역사를 바탕으로 그 지역의 특성을 캐내는 세밀하고 치밀한 묘사는 그의 장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느 거리나 거주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성품과 행동에 물리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과 같이 런던 또한 그 안에 오랜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온 감성의 패턴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의 대표작인 『혹스무어』는 런던을 배경으로 18세기 영국의 전설적 건축가 혹스무어의 일생을 재구성한 포스트모던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작가는 동일한 장소 안에서 과거와 현재를 병렬적으로 배치하는 서술방식을 사용하여 소설의 장이 바뀔 때마다 서로 번갈아 진행되면서 18세기와 20세기의 런던을 오간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각 장의 시작과 끝에 같은 구절을 반복함으로써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분리해 생각할 수 없도록 한다. 예를 들어 1장의 마지막 구절이 “한낮에도 별이 빛나는 걸 볼 수 있을 것만 같다”로 끝났다면, 2장은 “한낮에 그들이 스피털필즈 교회로 다가오고 있다”로 시작된다. 마찬가지로 2장이 “그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로 끝나자 3장은 “나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목소리로 변했다”로 시작한다. 이러한 장치들로 인해 우리는 비로소 두 이야기를 하나의 완성도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18세기의 건축가 니콜러스 다이어에 의해 교회가 재건축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20세기의 혹스무어 경관이 250년 전에 지어진 교회들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또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벌어지는 살인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이어가 저질렀던 살인과도 연결된다. 자연히 소설은 연속해서 벌어지는 살인의 범인은 누구이며, 왜 살인이 벌어지는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영국 앤 여왕이 통치하던 시절인 1711년. 런던은 대화재 이후 새로운 교회 건설을 계획하게 된다. 건축가 니콜러스 다이어가 이 작업에 책임을 맡아 착수하게 된다. 그러나 다이어는 어린 시절 역병으로 부모를 잃고 시내를 떠돌다 미라빌리스라는 이단 종교의 교주를 만나 그에게서 시체, 어둠, 제식 등의 관념을 이식 받게 되고 그만의 이러한 사상을 교회 건설의 밑바탕으로 삼으려한다. 그의 건축물들은 시체와 피의 의식을 통해 하나씩 완성 단계에 이른다.
앞서 말한대로 『혹스무어』는 포스트모던 소설로서의 면모도 잘 갖추고 있는데, 독자는『혹스무어』를 읽는 내내 환상, 꿈, 상징물, 모호함 등과 맞닥뜨리며 이성적으로 살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려는 노력은 종종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전통적인 탐정 소설이 범인이 남긴 흔적과 사건의 정황 등에 근거해 추론하고 범인과 범행 동기를 밝혀내는 논리적 구조를 갖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사실을 근거로 하면서도 사실 확인을 포기하게 만들며, 살인 사건 속에서도 사건 해결을 포기하게 만들어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오히려 이야기는 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과연 답이 존재하는가의 의문을 만들어낸다. 인간의 힘과, 이성적 능력 이면에 숨겨진 주술적이며 근원적인 거대한 힘에 눈길을 돌리는 가운데 그 배경이 교회로 등장하는 것은 작가가 던지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시사점이랄 수 있다.
또, 저자는 18세기의 내용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철자법, 문장구조, 라틴어의 혼용, 수많은 지식의 삽입, 인용부호 삭제 등의 18세기의 문체를 그대로 흉내 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랄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은 글을 손쉽게 읽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그 의도를 파악해갈수록 새로운 재미가 더해진다.
[저자 | 피터 애크로이드(Peter Ackroyd)]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피터 애크로이드>는 역사가, 전기 작가, 시인, 소설가일 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과 영화의 대본을 집필하는 등 다방면에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다. 1949년 10월 5일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과 예일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스펙테이터 잡지사에서 여러 해 동안 문학 편집자로 일했으며 타임즈의 주요 서평가로 활동했다. 초기에 세 권의 시집을 발간했지만 작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디킨스, 블레이크, 엘리엇, 토머스 모어 등 여러 문필가의 전기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그 성과로 많은 상을 받았다. 그의 손꼽히는 소설로『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증언 The Last Testament』(서머싯 몸 상Somerset Maugham Prize, 1984),『채터튼 Chatterton』(부커상The Booker Prize 후보, 1886), 『밀턴의 미국여행 Milton in America』(1996) 등 10여 편이 있으며 최근에도『트로이의 몰락 The Fall of Troy』(2006)을 발표하였다. 1984년에는 왕립문학원의 회원으로 임명되었고, 현재 런던에 머물며 창작 외에도 비평 및 서평을 주요 저널에 꾸준히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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