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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문학

Q[큐]

[책갈피] 2006. 6. 14. 13:18
 

Q[큐]

 


소설의 소개에 앞서 먼저 저자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이름은 루터 블리셋.  루터 블리셋은 카리브 해 출신의 흑인으로 1980년대 영국에서 축구선수로 활동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그가 이 소설을 쓴 사람은 아니다.  이 소설의 저자는 따로 있다.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니까 '저자들'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탈리아 볼로냐를 근거로 활동하는 4명의 젊은 작가가 ‘루터 블리셋’이라는 가명―그들이 왜 이 이름을 사용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으로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인터넷에 역사소설을 연재하게 된다. 그들은 이를 위해 볼로냐 종교학센터 도서관에서 6개월 동안 치밀하게 자료를 수집했으며 이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숨막히게 전개되는 1,000페이지의 소설을 완성했으니 이게 바로 소설 『Q』였다.  이 책은 출간 후 전 유럽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차지했으며,  영국 '가디언' 紙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이탈리아 언론은 이 책의 작가들의 정체에 대해 몇 달 동안 억측에 억측을 거듭하다가 결국 이들을 추적하기 시작했으며  신문들은 이 저자들에 대해 온갖 추측 기사를 써대기 시작했다. 곧 이 수수께끼는 이탈리아 영토를 벗어나 수많은 유럽인들을 사로잡았으며, 그리하여 유럽 전체가 블리셋 열기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루터 블리셋'이란 이름은 모든 이에게 개방되어 있는 멀티유즈용 이름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전 유럽에서 수백 명의 예술가와 사회 운동가들이 공식.비공식적으로 루터 블리셋이라는 이름을 공용해왔다.

 

한때 볼로냐에 근거를 두고 있는 저자들의 정체 불명의 신원과 관련해『Q』의 작가들 배후에 볼로냐의 대학 교수 ‘움베르토 에코’가 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은총>이라는 책 한 권에 유럽 전체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Q』의 설정이 <시학2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을 담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움베르토 에코는 반동이다”라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제도권과 어떠한 연관도 없음을 분명히 했다.

 

 

 


“기억의 파편들로 한 시대의 역사를 다시 짜 맞춘다. 나의 기억과 나의 적 Q의 기억으로”라는 기이한 문장과 함께 한 편의 소설은 시작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마틴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이 기세를 올리던 16세기 독일.  1518년 한 통의 편지가 교황청 카라파 추기경 앞으로 도착한다. 교회가 마틴 루터와 민중을 감시하기 위해 고용한 스파이 Q가 보낸 편지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면죄부 매매에 반대하는 설교는 새로운 것을 향해 활짝 열려 있는 젊은 영혼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Q의 보고에 등장하는 젊은 영혼들이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다.  이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는  ‘나’는 부패한 교회와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적인 영혼들 중의 한 명이다. 당시 독일은 신성로마제국을 유지하려는 황제파, 교황 절대 지지파, 황제와 교황의 권력을 약화시키려는 봉건 영주들, 절대 빈곤에 시달리며 억압과 착취에 분노해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로 분열된 상태였다.  ‘나’는 영혼의 혁명을 외쳤던 마틴 루터가 시간이 지나면서 혁명이 아닌 개혁으로 수위를 낮추는 것에 실망하며 공산주의적 이상향을 꿈꾸는 세력에 기울어진다.

이런 ‘나’의 대척점으로 카라파 추기경이란 인물이 나온다. 카라파는 주인공과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만 주인공과 달리 부패한 교권의 수호자이다.  또 다른 인물인 Q는 음지에서 추기경의 스파이로 활동하면서 평생을 ‘시대의 희망을 지우는 데’ 종사한 인물로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대위법적으로 겹치면서 그들의 삶과 투쟁을 숨 가쁘게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세 등장인물이 동일한 역사의 현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채 기나긴 대결과 투쟁의 급물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먼저 프랑켄하우젠의 농민 반란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당연히 루터의 뜨뜻미지근한 ‘개혁’에 실망하고 공산주의를 꿈꾼 토마스 뮌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카라파는 교묘하게도 루터가 로마 교회에 반발했지만 동시에 로마 교회를 힘으로 짓누르고 있는 신성로마제국에 맞선 제후들의 반란을 조장해 신성로마제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동지라는 것을 일찍부터 간파한다. 동시에 농민 반란은 당분간 로마 교회의 개혁 문제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대 제후들 간의 대결로 관심 밖으로 놓여나는 유효한 역할을 한다는 무시무시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 ― 제후 연합 ― 로마 교황청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게 되자 농민들을 역사의 무대 바깥으로 몰아내버린다. 당연히 Q는 이러한 음모와 공작의 최첨단에 선 음모가의 전형이자 전쟁 기계이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 Q ― 카라파는 역사의 고빗길마다 마주친다.


이처럼 세 사람을 축으로 그들의 삶과 투쟁을 숨 가쁘게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그러나 실제로 ‘전형적인 상황 하에 있는 한 개인의 전형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의 거대한 벽화처럼 읽힌다.  특히 이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다국적 금융 자본을 연상시키는 근대 금융 체제, 미국의 네오콘을 연상시키는 극단적인 반 종교개혁 세력, 또 오늘날의 알카에다를 상기시키는 극단적인 반 세계화 세력, 그리고 미국과 비슷한 제국의 등장 등 단순히 ‘역사’ 스릴러가 아니라 바로 오늘날의 우리 이야기처럼 읽힌다는 데 있다.

또한 온갖 음모를 놓고 벌이는 이러한 주인공들의 영혼의 격전만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움직임 그리고 시대의 흐름이 날카롭게 파악되어 묘사되고 있다. 즉 99%가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로 짜여졌다는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역사가 진행되고 역사의 주요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동기와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개혁의 도도한 물결을 거스리려는 반동세력은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 세력에 빌붙어 자기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사람들 또한 있게 마련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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