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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미 문 학

흉내[원제 : The Mimic Men]

 

흉내[원제 : The Mimic Men(흉내내는 사람들)]



V.S.네이폴의 장편 소설『흉내』는 식민지의 정치 지도자였던 주인공이 자신의 유년기의 체험, 유학생활과 귀국, 정치가로서의 입신과 좌절 그리고 망명에 이르기까지의 삶의 역정을 기록하고 있는 작품으로 작가의 오랜 실존적 화두인 정체성의 혼돈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존재에 질서를 불어넣으려는 한 식민지인의 긴 방황이 섬세한 기억의 문체로 형상화되어 있다.


작품의 배경은 서인도제도의 영국 식민지 중 하나인 이사벨라 섬이다. 주인공 그리팔싱은 이곳에서 인도계 이주민의 후손으로 태어나 자란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한 교사로, 코카콜라 주입 공장을 소유한 부유한 어머니 집안과는 반목하여 말을 끊고 지낸다.  유년기의 그리팔싱은 부유한 가문의 어린 압제자인 외삼촌 세실, 외숙모 샐리, 아프리카계인 브라우니, 복잡한 혈통의 호크, 프랑스계로 민중지도자 집안의 후손인 드샹뇌프 등 다양한 또래들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채 떠돌고, 갑자기 종교적인 민중지도자로 변신해버린 아버지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그는 여러 인종들이 뒤섞여 민족도 전통도 독자적인 문화도 없고, 오랜 식민지 생활로 인한 원한과 인종 갈등과 부패와 절망뿐인 고향을 탈출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이전까지의 모든 삶을 부정하고 미지의 곳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런던에서도 식민지 사람인 그리팔싱은 여전히 국외자이자 주변인으로서 이차원적이고 탈선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결국 그는 자신이 탈출해 나왔던 이사벨라로 영국인 아내 샌드라를 데리고 다시 탈출한다.

 

 

 

한때 자국에서 좌파정치인으로 행세하며 정치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데 참여했던 주인공은 이제 런던의 허름한 방에서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이 속해있던 식민사회에 대해 성찰하는 글을 쓴다.  런던이라는 중심부와 변두리 식민지 땅 이사벨라 섬을 교차시키면서 진행되고 있는 이 쓸쓸하면서도 풍성한 기억의 축제는 세상의 부조리와 무질서에 눈떠가는 유년의 공간에서부터 그 무질서와 뒤엉킨 채 사랑과 혁명의 격랑에 몸을 던지는 시기를 지나 이제 조용히 런던 교외의 한 허름한 호텔방에서 지난 세월의 혼돈을 기억하고 응시하는 한 식민지 지식인의 내면을 촘촘하게 따라간다.  이런 나 홀로 글쓰기는 정치드라마에 비하면 청중도 관객도 없는 초라한 판토마임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자신이 모방꾼이었으며 자신이 몸담았던 식민국이 근본적으로 혼돈의 도가니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에게 더 큰 아픔은 자신이 '마법의 도시'라고 여겼던 런던이 단지 마취된 질서와 죽음의 도시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자신의 처지가 '난파된 배'와 같다는 인식은 다름 아닌 절망의 선언이다. 더욱 굴욕적인 일은 그곳에서 식민종주국이 배풀어 주는 자선(그가 한때 잠시 사귀었던 영국여성 레이디 스텔라의 자선단체)에 의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책 속에서…… ]

우리는 진짜인 척하고, 배우는 척하고, 인생에 대한 준비를 하는 척했으나, 사실은 새로운 세계,  그 신세계의 한 미지의 모퉁이, 새로운 것에 아주 빨리 찾아오기 마련인 부패를 기억나게 하는 것들로 가득한 곳에서 사는 흉내 내는 사람들이었다.  



지은이 소개

V.S.네이폴은 1932년 서인도제도의 트리니다드 섬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곳은 영국의 통치하에 있었으며, 네이폴의 조부는 영국의 또 다른 식민지였던 인도로부터 이주해온 브라만 계급 출신이었다. 소설가이자 언론인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많이 받은 네이폴은 18세 때인 1950년 옥스퍼드 대학의 장학생으로 영국에 가게 되었는데, 이후 그는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지내고 있다.

유색인으로서 백인사회로 옮겨와 정착해야 했던 개인적인 체험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방황하는 고독한 이방인이라는 주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폴의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인종과 국가의 고통 받고 방황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은 『흉내』로 1967년 ‘W.H. 스미스 상’을 수상했으며, 또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부커상'과 '데이비드 코엔'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제3세계의 문제점과 식민주의를 둘러싼 모순들을 비판하는 작품으로 매년 노벨상 후보에 추천되기도 했다.   작품으로 『자유국가에서』, 『거인의 도시』, 『비스워스 씨를 위한 집』, 『굽이치는 강』, 『도착의 수수께끼』 등이 있다.  노벨문학상 100주년인 200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