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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Manana en la batalla piensa en mi] 본문

스페인·라틴문학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Manana en la batalla piensa en mi]

[책갈피] 2006. 7. 25. 19:32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고 네 무딘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전쟁터에서 내가 살아있었을 때의 모습을 생각하고, 네 녹슨 칼을 떨어뜨려라.  내일 내가 네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리라.”

                                                                <셰익스피어, '리처드 3세' 중에서>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뛰어난 문학성과 실험성으로 1995년에 남미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물로 가예고스상’과 스페인 한림원이 주는 ‘파스텐라스상’을 받은 작품이다.  1996년에는 ‘페미나 외국 문학상’과 1998년에는 이탈리아의 ‘몬델로 치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시간과 기억에 대한 성찰을 범죄소설의 형식에 담고 있으며 작가의 능수능란한 솜씨로 재미와 철학을 적절하게 버무려내면서 그 결말을 미리 예상치 못할 만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은 마지막장에 이르기까지 책장에서 손을 떼지 못할 만큼 흥미진진하다.

 

 

소설은 사건으로 시작한다.  같은 시각, 두 여자가 죽는다.  작가는 두 여자의 죽음 사이에 얽힌 미스터리를 벗겨나가며 그 사건에 숨겨진 사랑과 죄악, 기억 등 철학적 명제를 끊임없이 꺼내 독자 앞에 던져 놓는다.

주인공인 빅토르 프란세스는 어느날 마르타의 집에 저녁 초대를 받는다. 그녀의 남편인 데안은 영국으로 출장을 떠났고 집에는 여자와 어린 아들만이 있을 뿐이다. 식사를 하고 어린 아들을 잠재우고 둘 사이에 보다 은밀한 시간을 보내려는 찰나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그녀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  누군가에게 알리기엔 너무나 상황이 미묘하고 황당하다.  결국 그녀의 죽음에 주인공은 방관자로 머물 수밖에 없다.


몇 일 후 마르타의 장례식에 몰래 참석한 빅토르는 그녀의 남편(데안)이 그녀가 죽는 순간 곁에 누군가 다른 남자가 있었음을 알고 있으며 그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엿듣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녀의 가족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먼저 그녀의 아버지에게 접근한 빅토르는 차차 거리를 좁혀 드디어 데안과도 조우하게 된다.  두 남자는 자신의 처지를 서로에게 설명한다.  놀랍게도 마르타가 죽는 순간에 런던에 있던 데안도 애인이었던 여자가 뜻밖의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그들을 짓누르고 있던 공포와 두려움의 무게를 벗어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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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것의 실체를 요모조모 따져보는 일은 부질없다. 그것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의 시작과 끝을 한꺼번에 알아차리겠다는 욕심과 같은 것이다.  나는 누군가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없으며, 그 누군가도 나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없다.  아니 좀 더 엄격하게 말한다면 나는 나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저 우리들은 자신 앞에 닥친 어떠한 사건들의 실체라기보다는 그 표면에 실린 실체에서 떨어져 나온 부유물의 총합으로 스스로에 대해 혹은 누군가에 대해 어림짐작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소멸의 길을 향해 나아가며 사라진다. 흔적을 남기는 것은 거의 없다. 단 한번만 일어날 뿐 반복되지 않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매일매일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도 흔적을 남기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나무가 많은 숲 속에서 한 나무에 매달린 작은 가지가 부러져 땅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면, 그런데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 나뭇가지는, 또는 그 나뭇가지의 떨어짐은, 또는 그 나뭇가지의 떨어짐의 소리는 존재했던 것일까?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하비에르 마리아스> 

스페인의 저명한 철학자 훌리안 마리아스의 아들로, 1951년 9월 20일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미국 웰레줄리 대학교, 스페인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가르쳤다.

하비에르는 그의 작품이 1990년대 들어 인정받으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의 작품은 영어, 불어, 독일어, 일본어 등 22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에 3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특히 독일에서는 『너무나 하얀 마음』이 70만 부 이상,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출간 3개월 만에 15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1997년에는 ‘노벨 문학상의 대기실’―이 상을 받은 작가 중 많은 사람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이라 불리는 독일 ‘넬리 작스 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늑대의 지배』, 『지평선 횡단』, 『시간의 군주』, 『세기』, 『감성적인 사람』, 『모든 영혼』, 『너무나 하얀 마음』,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 『시간의 검은 등』, 『그녀들이 잠자는 동안』, 『내가 인간이었을 때』, 『불길한 징조』, 『지난 열정들』, 『문학과 환상』, 『귀신의 삶』, 『어둠의 손』, 『내가 없을 때 사랑받으리』, 『야만과 감성』등이 있으며, 토마스 하디와 조셉 콘라드, 토마스 브라운, R. L. 스티븐슨, 윌리엄 포크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애쉬베리, 월러스 스티븐스, W. H. 오든, 로렌스 스턴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지난 이십 년간 <하비에르 마리아스>처럼 나를 감동시킨 작가는 없었습니다.  <하비에르 마리아스>는 생존 작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와 버금가는 생존 작가를 언급하라면, 아마도<G.G.마르케스> 밖에 없을 겁니다. 『내일 전쟁터에서 나를 생각하라』는 아주 뛰어난 소설이며 동시에 철학서입니다.

                                                    ― 마르셀 라이히 라닉키(독일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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