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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피트리온[Amphitryon] 본문

스페인·라틴문학

암피트리온[Amphitryon]

[책갈피] 2006. 11. 8. 09:09

 

암피트리온[Amphitryon]

 

 


암피트리온[Amphitryon] 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페르세우스의 손자이며 티린스의 왕 알카이오스와 아스티다메이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우연히 삼촌인 미케네 왕 엘렉트리온을 죽이고 엘렉트리온의 딸인 알크메네와 함께 테베로 도망쳤으며, 그곳에서 외삼촌인 테베 왕 크레온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았다.

알크메네는 암피트리온이 타피안스와의 싸움에서 죽은 오빠들의 복수를 해줄 때까지 결혼하기를 거절했는데, 크레온은 만일 암피트리온이 골치아픈 카드메이아 암여우를 없애주면 도와주겠다고 제의했다. 암피트리온은 케팔로스의 용감무쌍한 크레톤 사냥개 라일랍스를 빌렸으나, 제우스는 암여우와 사냥개를 모두 돌로 변하게 했다.

타포스섬의 왕 타피안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이 심어 준 황금빛 머리카락 덕분에 죽지 않는 몸을 가졌으나 암피트리온을 사랑한 그의 딸 코마이토가 그만 황금빛 머리카락을 없애버리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타포스섬을 점령한 암피트리온은 아버지를 배반했다 하여 코마이토를 처형하였다. 암피트리온은 테베로 돌아와 알크메네와 결혼했다.

암피트리온에 관한 신화는 그보다 그의 아내 알크메네의 이야기로 더 유명하다. 제우스는 인간의 영웅 중에서 가장 훌륭한 영웅을 인간 세계에 보내려고 궁리하다가 알크메네의 몸을 빌리기로 한다. 늘 싸움터에 나가 있던 암피트리온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날 그로 변신한 제우스가 알크메네를 찾아가 그간의 여행과 전쟁 이야기 등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바람에 알크메네는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  그가 싸움터에서 돌아온 남편으로 믿고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진짜 암피트리온이 돌아오고, 9개월 뒤 알크메네는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와 암피트리온의 아들인 이피클레스를 쌍둥이로 낳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암피트리온’ 이야기는 ‘속임수’와 ‘변신’의 모티브이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플라우투스>가 희극 『암피트루오Amphitruo』를 지었고 <몰리에르>는『암피트리온(Amphitryon)』라는 희곡을 썼다. 또 <크라이스트>, <지로두> 등도 같은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헤라클레스는 낳는 알크메네>


마술적 사실주의와 이국적 요소, 그리고 스토리 텔링 중심으로 대변되는 중남미 소설은 보르헤스, 마르케스 이후에 ‘호르헤 볼피’나 ‘이그나시오 빠디야’ 등의 젊은 작가들에 의해 꾸준히 그 지평을 넓혀왔다.  이들은 보르헤스의 귀중한 ‘보편성’(universality)과  마르케스의 산문적 풍요로움이라는 이중 유산을 효과적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몇 안 되는 작가들로서  중남미 문학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면서도 현실과 역사에 밀착된 허구 세계를 치밀한 스토리 전개와 긴장감이 넘치는 분위기로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가 공명하는 세계로 변환시켰다.


[‘그림자’로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방식에 관한 탐색]

<이그나시오 빠디야>의 『암피트리온』은 20세기의 어두운 역사와 정치상황을 소재로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방식에 대한 문제를 탁월하게 풍자한 수작으로 평가받아 미국과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소설에서 ‘암피트리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정책에 반대하는 몇몇 간부들이 전후에 탈출을 꾀하려 고위인사들을 대신할 신분 대역자들을 훈련했던 작전명이자, 순간의 승부로 존재 전부를 잃게 되는 운명의 상징이다.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 중반부터 제2차 세계대전 말까지 오스트리아, 독일, 폴란드, 세르비아를 무대로 네 명의 화자가 번갈아 전하는 각각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암피트리온』은 각 부마다 각기 다른 화자가 등장해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곳곳에 숨어 있는 암시와 복선의 단서를 통해 전체의 줄거리가 하나로 모아진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주제도, 문체도, 복선도, 예측할 수 없이 얽히고 설켜 있다.  


제1부의 첫 번째 화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청년 ‘프란츠 크레츠쉬마르’이다. 그는 타도이스 드라이어였던 자신의 아버지가 빅토르 크레츠쉬마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1차 대전 전쟁터로 향하는 기차에 탄 신병 드라이어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크레츠쉬마르라는 사람과 목숨을 담보로 체스 내기를 한다.  내기에서 진 크레츠쉬마르는 드라이어라는 이름으로 전쟁터로 가고,  내기에서 이긴 드라이어는 크레츠쉬마르로 신분을 바꾸어 잘츠부르크 역에서 선로를 바꾸는 전철수가 되어 새 삶을 산다. 훗날 가짜 드라이어가 전쟁 영웅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진짜 드라이어는 질투에 사로잡혀 가짜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열차를 탈선시켜 암살을 기도한다.


제2부에 가서는 신학대생 ‘라하르트 쉴리’가 화자로 등장한다.  쉴리는 사제를 따라 전선에 종군했다가 그가 죽자 전사자들의 종부성사를 대신하게 된다.  1918년, 오스트리아 전선에서 쉴리는 어린 시절 함께 체스놀이를 즐겼던 에프루와 만나게 되지만, 그는 자신을 드라이어라고 소개한다. 결국 가짜 드라이어가 “수많은 가짜 이름으로 살아왔다”는 고백을 남기고 자살하자, 쉴리는 에프루를 대신하여 자신이 드라이어로 살기로 결심한다.


제3부에서는 ‘1차 대전의 영웅 드라이어 대령’이 된 쉴리가 히틀러의 부하로 등장한다. 드라이어는 유태인 학살을 자행하는 아돌프 아이히만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가짜 아이히만을 만드는 ‘암피트리온’이란 작전을 세우지만, 그 계획이 공개되자 스위스로 몸을 숨긴다.


그리고 마지막 이야기의 주인공은 ‘대니얼 쌘더슨’이다. 런던에 머물고 있던 그는 히틀러 시대의 마지막 작전 가운데 일부를 설명하기 위해 1989년 어느 체스 교본에 코드화된 정보를 남긴 폴란드 출신 남작 블록 키제브스키의 유산 상속자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만년에 폴란드에 거주한 남작은 타도이스 드라이어의 일곱 가지 변신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대니얼 쌘더슨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 처형, 그리고 그와 타도이스 드라이어와의 연계를 조사하면서 네번째 유산 상속자가 프랑크푸르트의 요양원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여기서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에서 처형당한 한 남자의 진짜 신분이 과연 누구였는지 강한 의구심을 갖게 된다.

 

 

매 쪽마다, 또 화자와 등장인물이 바뀔 때마다, 줄거리가 꼬이고 뒤섞일 때마다 독자들은 조바심어린 질문을 하게 된다. 화자의 실체는 누구이며 화자가 말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독자는 화자와 등장인물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밝히기 위해 앞뒤로 쉬지 않고 옮겨 다녀야 하며, 가끔씩은 작가가 설치해놓은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동일한 인물이 계속 다른 모습으로, 다른 그림자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치밀한 서사 전략에 따른 현란한 언어 구사를 통해 엮인 문장을 하나씩 읽다보면, 가면 뒤에 감춰진 등장인물의 얼굴을, 그림자의 윤곽을 어렴풋이 인지하게 되고 결말 부분에서는 그 실체를 포착하게 되며, 그동안 숨겨져 있던 것들을 하나하나 파악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각기 다른 유형의 인간이 서로 뒤얽혀 있는 다중구조를 탁월하게 펼쳐 보이는 이 소설에서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종국에는 서로 같은 인물이 되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관계를 파악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처럼 비비꼬인 듯 하면서도 팽팽하게 유지되는 줄거리, 등장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작가의 역량은 끊임없이 놀라움을 유발시킨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작가와 독자 사이에 벌어지는 지적인 체스게임과 같다.


20세기 서구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이러한 역사적인 상흔을 포착해내 문학적으로 승화해낸 작가는 역사와 현실을 꿰뚫어보는 폭넓은 통찰력과 그 이면을 집요하게 탐구하여 허구 세계를 가공해낸 상상력을 바탕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거짓이 횡행하던 어두운 시대의 역사와 정치 상황 그 자체가 추리이고 허구였음을 폭로하면서 우리에게 두 가지 물음을 던진다.  하나는 역사의 진실성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나는 세상의 유일한 존재일까?”라는,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다.

이 작품은 <오르한 파묵>의 『하얀성』을 읽었을 때 보다 더 강렬하게 나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갖게해준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나는 누구일까?,  내가 누구를 대신하여 살고 있지는 않은 걸까?”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떠올랐으며, 이 소설을 마쳤을 때, 마치 지긋지긋한 미로를 간신히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시대, 소설은 죽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작가들이 존재하는 한 ‘소설은 영원하리라’하는 믿음을 주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 이그나시오 빠디야 ]

 1968년 멕시코에서 태어났다. 이베로아메리까나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영국 에든버러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스페인 살라망까 대학에서 세르반떼스 연구로 스페인.중남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 문학적 동지들과 더불어 ‘크랙’(Crack)이라는 그룹을 결성해서 멕시코 문학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으며, 픽션과 논픽션을 통해 ‘알폰소 레이에스 신예작가상’(1989)을 비롯해 무려 일곱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특히 세번째 소설 『암피트리온』(Amphitryon)으로 2000년 스페인에서 받은 ‘쁘리마베라(Primavera) 문학상’은 그를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프랑스 문예지 「리르」는 그를 '다가오는 시대의 15대 작가'로 선정했다. 2006년 현재 멕시코 뿌에블라 대학에서 스페인.중남미 문학을 강의하며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고양이들이 지하철로에 갇힌 해』, 『질식당한 자들의 대성당』, 『왕 부처가 돌아온다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