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 미 문 학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


    『파이 이야기』란 책에 대해서 처음엔 관심이 없었다.

     신문 서평란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배가 침몰하면서

     한 소년이 태평양 한 가운데서 무려 227일 동안이나

     표류하다가 살아남았다. 그것도 벵골 호랑이와 같은

     배에서 함께…… ”  꼭 동화같은 모험담이라서 현대판

   『로빈슨 크루스』나 『15소년 표류기』 정도의 이야기

     이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더군다나 『바다 한 가운

     데서(나다니엘 필프릭)』와 같은 사실을 기초로 해서

     쓴 다큐멘터리류의 소설도 아닌 것 같고 ……

     그런데도 결국 읽게 만든 요인은 아마 ‘2002년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레테르’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은 내가 여태껏 읽은 부커상 수상작―『추락(J.M.

     쿳시)』, 『작은 것들의 신(아룬다티 로이)』,『잉글

     리쉬 페이션트(마이클 온다치)』,『소유(A.S.바이어

     트)』등―에 대해서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어왔기 때문

     일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을 읽어 가면서 앞서의 나의 생각을  많이 수정하게 됐다.  전체 3부에 100개의 장으로 짜여진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인도 소년 ‘파이’의 이야기이다.  '파이'는 인도 남동부 폰디체리에서 나고 자란 소년의 이름이다. 본명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지만 ‘피싱 파텔’(‘소변을 보는 ’이란 뜻)로 놀림당하는 것이 싫어 파이(π)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동물원을 경영하는 부모 덕분에 비교적 유복하게 자란 파이의 운명은 하루아침에 바뀐다. 인도의 불안한 국내 정세 등을 이유로 동물원을 처분하고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캐나다를 향해 가던 일본 선적의 화물선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침몰하게 된다. ‘파이’는 배가 침몰하면서 가족을 잃고 홀로 호랑이와 하이에나, 오랑우탄, 얼룩말과 남게 되는 구명보트에 던져지게 된다.  그런 후 얼룩말과 오랑우탄이 하이에나에게 잡아먹히고, 또 그 하이에나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끔찍한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보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작고 좁은 배에 파이와 호랑이뿐.

 



하지만 파이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동물원에서 자라며 익힌 동물의 습성을 이용해 호랑이를 제어하고, 심지어 그 호랑이를 길러가며 긴 조난의 여정을 이어간다. 1977년 7월 2일 태평양 공해상에서부터 다음해 2월 14일 멕시코 해안에 닿기까지 무려 227일 동안 소년은 구명보트에 보관돼 있던 비상식량과 도구를 이용해 갈증과 허기를 해결하면서 살아남는다. 작은 배에는 호랑이, 물에는 상어가 기다리고 있는 극한의 상황. 거기서 소년은 낚시로 물고기를 잡아 올리기도 하고, 바다거북을 잡아 그 피로 목을 축이기도 한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공포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악착같이 호랑이에게 먹이를 해결해주는 장면은 차라리 경외감마저 든다. 파이 스스로 말하듯, 아마도 호랑이가 없었다면 그 긴 조난의 여정을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래전에 어떤 책에선가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운반 중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물고기의 천적인 물고기를 1~2마리 넣어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한다’는 글을 읽은 적인 기억난다.


『파이 이야기』는 사람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는 일종의 명상록이다. 또 태평양에서 조난당한 16세 인도 소년의 삶을 향한 열정을 기술한 모험소설이라는 형식은 '희망의 철학'을 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무대장치라고 볼 수 있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파이’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자 <얀 마텔>은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27세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신』(1996),『헬싱키 로커모쇼 가 이면의 진실』(1993) 등의 소설을 발표했고『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받았다.


'영 미 문 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환상의 책  (0) 2005.11.24
핑거포스트, 1663  (0) 2005.08.11
소유  (0) 2005.08.11
그리고 죽음...  (0) 2005.08.11
속죄[Atonement]  (0) 2005.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