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도서관
내 이름은 빨강 본문
내 이름은 빨강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장편소설「내 이름은 빨강」은 저자가 1998년 발표한 소설로 세계 32개국에 번역됐을 정도로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16세기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무대로 궁정화가들 사이에 벌어진 예술적 갈등, 여기서 비롯된 살인사건 등을 추리기법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작가는 궁정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이스탄불 외곽의 우물에 시체로 버려진 궁정화원 소속 금박세공사 엘레강스의 우울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궁정화가 에니시테는 수년 전 베네치아의 궁전
과 귀족의 저택에서 보았던 초상화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그는 술탄에게 유럽의 화풍을 도입
한 삽화를 실은 책을 제작하게 해달라고 설득한
다.
에니시테는 술탄의 세계를 서양화풍으로 그린
책을 비밀리에 제작하라는 명을 받고 화원에서
가장 기예가 뛰어난 장인들을 선발해 밀서의
제작에 나선다. 그러나 밀서의 제작 과정에서
이슬람 전통의 세밀화가들은 신성모독적인 서
양미술을 받아들이는 것에 갈등과 불안을 느낀
다.
화가들 사이의 갈등은 격렬한 논쟁으로 이어지
고 살인을 불러온다. 서양 화풍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려 했던 에니시테마저 살해되면서 궁정
화원은 점점 피투성이로 변해간다. 술탄은 일련의 살인사건이 자신을 향한 도전이라 여기고 궁정 화원장 등을 시켜 살인범을 찾아내라고 명한다.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살인범의 정체를 밝히는 추리소설 형식을 띠고 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시대적, 정치적 변화 속에서 화가들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해 갈등하고 번민하는 모습을 담아낸 '예술가 소설'이다.
소설 속에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인간중심적인 서양미술과 '신의 관점'에서 대상을 평면적이고 투시적으로 묘사하는 페르시아 미술의 충돌이 묘사된다. 궁정화가들 사이에 이슬람 회화의 전통이 쇠퇴기로 접어들었다는 인식, 낯선 그림에 대한 종교적 두려움 등이 싹트면서 살인사건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세 남자의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에니시테의 딸로 절세미인인 셰큐레를 중심으로 그녀를 어릴 때부터 사랑해온 카라, 셰큐레를 향해 끈질기고 맹목적인 연정을 품고 있는 시동생 하산, 딸을 늘 곁에 두고 싶어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복잡하고 미묘한 사랑싸움이 펼쳐진다.
'아시아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 (0) | 2005.09.22 |
---|---|
눈 (0) | 2005.08.11 |
하얀성 (0) | 2005.08.10 |
사마르칸드, 그리고 타니오스의 바위 (0) | 2005.08.10 |
금각사 (0) | 2005.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