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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본문
지옥 ― 관음증 혹은 병든 일상의 내면을 보는 고통
<앙리 바르뷔스>의『지옥』은 제목 그대로는 아니어도 좀 ‘지독’한 냄새가 나는 소설이다. 『지옥』은 ‘옆방 훔쳐보기’ 즉 엿보기를 통하여 다양한 인간군상의 실체를 진단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허위의식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정욕의 갈등과 죽음의 고뇌 속에서 허덕이는 모습을 관조하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심도있게 탐구한 소설이다.
서른살의 이름없는 주인공인 ‘나’는 파리로 올라와 은행에 취직한다. 파리에 연고가 없는 ‘나’는 한 호텔― 정확히 말하면 속물 근성이 배어있는 주인인 ‘르메르’ 씨의 하숙집―에 장기 투숙하게 된다.
자신의 방에 걸린 거울에 스스로를 비추어보면서 주인공인 ‘나’는 신, 종교상의 교리, 철학적 논쟁, 진리 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피력한다. 그러고 삶의 한 순간을 회상하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옆방으로 뚫린 구멍을 발견하고 그곳을 통해 엿보기를 시작한다.한번 엿보기 시작한 버릇은 쉽게 그칠 수가 없다. 그 구멍을 통해 주인공은 다양한 부류의 인간상을 목격하게 된다. 사촌간 오누이로 자란 어린 남녀가 처음으로 성에 눈을 뜨는 전율, 사람의 눈을 두려워하는 동성애의 두 여인, 의사와 환자, 죽음에 임박한 노인과 그의 젊은 약혼자 등 매일 그 방에 투숙하는 사람들의 삶과 애욕을 주인공의 관찰을 통해 작가는 다분히 의식적인 선정적 묘사와 죽음과 태어남에 대한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로 읽는 이들을 전율케 하며 이 작품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자연주의적 작풍을 띠고 있는 이 작품은 마지막에 주인공이 염세주의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엽기적인 이 작품에서 젊은 날의 작가의 인간관과 사회관을 명료하게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외국에서는 이미 「삶을 성찰하는」 문제작으로 평가받은 수작이다.에밀 졸라를 뒤이은 프랑스 사실주의 작가의 대표작인데다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힌 바 있는 <콜린 윌슨>의 명저 『아웃사이더』가 바로 이 소설『지옥』에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밀한 욕망의 한복판인 호텔에 묵으면서도 그 욕망을 그저 관찰할 뿐인 주인공.벽구멍을 통해 인생을 들여다보는 사람, 그는 바로 ‘아웃사이더’인 것이다. 아웃사이더란 ‘일정한 사회관계가 성립되어 있는 경우 그 범위 밖에 있는 사람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정의 되지만 본래는 국외자(局外者)·문외한 등을 뜻하는 말이다.
1955년 <콜린 윌슨>이 그의 저서 『아웃사이더』에서 일련의 작품의 주인공, 철학자, 작가, 모험가 등을 묶어 ‘아웃사이더’라고 부름으로써 문학상의 중요한 술어가 되었다. 윌슨은 바르뷔스의 『지옥』을 시작으로, 사르트르, 카뮈, 헤밍웨이, G.그랜빌바커, 헤세, 헨리 제임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의 작품에 나오는 몇몇 주인공, 그리고 철학자 니체, 윌리엄 제임스, 모험가이자 작가 T.E. 로렌스, 화가 반 고흐, 무용가 니진스키 등을 아웃사이더로 분류했다.
윌슨 자신이 정의한 아웃사이더의 특징에는 삶에서 소원감(疏遠感), 비현실감을 느끼고, 부르주아의 세속적인 삶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진화론적 완성을 기도하며, 요설(饒舌)과 무의미한 행위로 가득 찬 속물적인 일상에서 뛰쳐나와 실존하고자 하는 등의 공통점이 있다.
[소설 속으로…… ]
“진실이 생산될 수 있는 공간, 진실이 생산되나 안으로 감추어져 있는 그 곳에서 자신의 삶의 열망이 드러나게 된다. 어두운 방 속의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시간은 우리의 욕망을 잘라 먹어 어둠 속에 내던지고 결국 우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끝없는 욕망의 덩어리인 삶은 결국 죽음에 의해 먹히는 것이다.
삶은 열망으로 가득차고 그 열망은 고독하고 비참하고 때론 비열할 수 있는, 아무 쓸모없는 노력일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비참함과 위대함이 결합되어진 것이고, 우리의 위대한 비참함은 신성한 것이다. 삶의 열망 자체가 진실한 것이고 그 진리를 찾으려 하는 노력은 바로 가장 경건하고 신성한 것이다.“
"낙원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교회의 큰 묘지로 우리를 데려가는 주검이 있을 뿐이다. 지옥도 없고 다만 살려고 발버둥치는 생의 열광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때 우리는 초라한 일 속에 신이 차지하고 있던 모든 자리를 각기 차지하는 습관을 익히게 되리라. 진리 자체가 효과적이고 실용적이며, 말하자면 종교적인 위로를 주고, 그 진리의 이름으로 빌 때 하늘은 개화되는 것이다.”
[작가 소개]
<앙리 바르뷔스 H.Barbusse>는 1893년 파리 근교 아니에르 출생했다. 시집『곡(哭)하는 여자들 Les Pleureuses』(1895)을 통해 신상징파 시인으로 문단에 데뷔했지만 『지옥 L'Enfer』(1908)으로 E. 졸라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며 신자연주의 소설가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중인 1914년에 보병으로 자원 입대해 2번의 수훈장을 받았으며 1917년에 부상을 당해 결국 제대했다. 참전 경험을 토대로 『포화:분대 일지 Le Feu;joumal d'une escouade』를 써서 콩쿠르상을 수상했다. 이 책의 부제인 '분대 일지'에서 저자는 참호 속에서 생활하는 프랑스 군인들의 집단 경험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규탄한다. 그는 유혈과 파괴의 공포를 겪은 뒤 사회 전체를 고발하게 되었다.
이어 발표한 『광명 Clartè 』(1919)은 계급의식을 나타내었을 뿐만 아니라 수법도 졸라의 뒤를 이은 극명한 사실주의가 되었다. 그는 이 작품을 계기로 <광명은 만인의 것>이라는 사상 아래 <클라르테운동>이라는 국제적인 평화운동을 시작하였고, 주간지 『클라르테』를 발행하여 세계의 지식인에게 호소하였다. 그 후 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원으로서의 실천에 몰두, 반전운동·국제문화운동에 협력하고 국제작가동맹 프랑스 지부의 기관지 『코뮌 Commune』을 주재하였다. 1935년 소련 방문중 객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