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Murder]
1909년 8월 29일,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카를 구스타프 융과 산도르 페렌치―지금 시점에서 보면 기라성 같은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이다 ― 등의 제자와 함께 증기선 조지 워싱턴 호를 타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국 땅(뉴욕)을 밟는다. 프로이트는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 있는 클라크대의 학장이었던 그랜빌 스탠리 홀의 초청을 받아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기념강연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이 강연을 통해 프로이트는 아직 정신분석학이 학문으로서의 뿌리를 내리지 않은 미국에서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설파하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기성 신경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기 어머니를 범하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 얘기’ 라고 폄훼할 정도로 정신분석학은 미국에서 몰이해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미국을 다녀온 뒤로 프로이트는 “미국인은 야만인”이라며 혐오했다. 그리고 1912년에 카를 융과도 헤어져 정신분석학계의 위대한 두 사제는 각기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한데 대해 프로이트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아 전기 작가들에게는 이 부분이 늘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혹시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것 말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가인 <러벤펠드>는 프로이트의 이러한 행보 뒤에는 뭔가 수상쩍은 사건이 있지나 않았을까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재구성해냈다. 사실 이 소설의 설정과 달리 프로이트와 융과의 결별은 이 사건이 있은 한참 후인 1912년 즈음에 일어난 사건이다.
(아래 좌에서 우로, 지그문트 프로이트, 산도르 페렌치, 한스 작스, 오토 랑크, 카를 아브라함,
맥스 아이팅곤, 어니스트 존스)
1909년의 뉴욕의 건축 산업은 발작을 일으키듯 급성장해 온 시가지를 뒤흔들었다. 마천루라고하는 거대한 탑들이 인간의 손으로 지은 어떤 건축물보다 높이 경쟁하듯 솟아올랐다. 이런 시대적 배경을 깔고 프로이트의 뉴욕 방문과 때를 맞추어 뉴욕 최고급 고층 아파트에 거주하는 미모의 여인이 온몸에 채찍질 자국을 남긴 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파트 건축주 조지 밴웰은 뉴욕시장 맥클레렌의 권력을 등에 업은 유력 인사다. 살인사건이 밖으로 새나가면 안 된다는 시장의 지시를 받은 휴겔 검시관은 순진한 형사 리틀모어를 데리고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맡는다. 그러나 부검을 하기도 전에 시신이 사라지고, 얼마 뒤에는 열일곱 난 소녀 노라 액튼 양이 집안에서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피해를 입는다.
우연히 살인사건에 개입하게 된 프로이트는 이 소설의 話者이면서도 그의 사상을 열렬히 신봉하는 스트랜섬 영거에게 살아남은 피해자 노라―프로이트가 『꼬마 한스와 도라』라는 저서에서 소개했던 환자 ‘도라’의 변형이라 생각된다―의 정신을 분석하게 하고, 자신은 조언하면서 조금씩 범죄의 진실에 다가간다. 한편 노라와 마주한 영거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며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가상의 인물인 주인공 영거를 통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새롭게 해석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죽느냐 사느냐'로 알려진 햄릿의 유명한 대사 'to be or not to be'를 정신분석학적인 틀을 통해 '그대로 있을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보일 것이냐(to be or to seem)'로 해석한다. 또 소설 속에서 노라 액튼을 둘러 싼 일화 중 등장하는 기억상실과 히스테리 기제에 대한 설명, 그리고 노라와 영거 사이의 관능적이고 로맨틱한 전이적인 관계 설정은 비록 그것이 허구일 지라도,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내면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정신분석에 관한 상당한 분량의 문헌에 기반한 이러한 흥미로운 시도는 작가 자신이 영거의 입을 빌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이론과 햄릿을 재해석하는 통찰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 정신분석학의 두 거장이면서도 감정적으로 대립했던 프로이트와 융의 갈등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도 흥미롭다. 작가는 사료를 토대로 소설 곳곳에 두 사람이 부딪치는 모습을 그려 놓는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벌어지는 맨해튼 호텔 방에서의 격렬한 논쟁은 실제로 그해 3월 오스트리아 빈의 프로이트 자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 책이 증거하는 더 중요한 함의는 여전히 정신분석이 프로이트의 책에서 뿐 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 안에서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니까 『살인의 해석』은 현실이 다시 상상계의 거울이 되고, 상상계가 다시 현실을 반영하는 일종의 이중의 거울처럼 혹은 이중의 액자처럼 정신분석이란 이론에 현실이란 테두리를 두른다. 우리는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어느 때 보다도 살인자와 그 살인자를 둘러싼 시대의 마음까지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드 러벤펠드 Jed Rubenfeld]
현재 예일 대학 법과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저명한 법률학자인 저자는 학자이기 이전에 열렬한 문학청년이었다. 프린스턴 대학교 재학 당시 졸업논문으로 프로이트를 선택했고, 줄리아드 연극원에 진학해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 성공한 법률학자지만, 젊었을 때 간직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저버리지 못하고 조금씩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첫 작품이 바로 전 세계 32개국에 판권이 팔린 『살인의 해석』이었다. 이 소설은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출판사는 이 소설의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저자에게 선인세 100만 달러를 지급했고, 초판 부수를 무려 18만 5천부를 찍었다고 한다. 출간되자마자 각종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을 휩쓸었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또 「타임」지의 ‘2006년 가장 기대되는 책 10’,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등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다른 저서로는 『사법부에 의한 혁명: 미국 헌법의 구조』와 『시간 속의 자유: 입헌 자치 정부 이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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