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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긴 연대기
스물네 살에 쓴 처녀작 『죽은 군대의 장군』 이래 줄곧 알바니아의 신화적인 모습을 탁월하게 형상화해냄으로써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알바니아를 세계에 소개한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Ismail Kadare). 그는 줄곧 알바니아의 역사적인 기억과 구전적 전통에 뿌리박은 20여 편의 소설과 에세이, 문학연구서 등을 발표, 알바니아의 신화적인 모습을 작품에 형상화하고, 공산 전제정권에 저항하며 베일에 가려진 알바니아를 세계에 소개해왔다.
※ 물론 지금의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다. 1992년 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승리하여 40여년간의 공산정치는 막을 내렸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프랑스의 지지를 업고 매년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수많은 언론과 문학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그의 작품 세계의 특징은, 비천하고 왜소한 삶에서 인간을 끌어올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카다레는 죽음, 나쁜 날씨, 전제주의, 지옥을 상징하는 문서실, 도로 등의 이미지를 잘 활용하고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문장과 문학적 장치를 활용하여 다층 구조의 이야기를 직조해낸다. 또 고대신화를 원용하기도 한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돌에 새긴 연대기』는 허무와 광기로 이어지는 알바니아인의 고단한 삶을 한 소년의 눈으로 유머러스하게 재구성한 작품이다. 자유를 상징하는 물방울들이 '물탱크'에 모여 어떠한 위험과 압박으로 이어지는가를 상징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상한 나라―그 도시를 정복한 이탈리아를 말한다―의 사람들이 만든 종이 집, 안경을 통해 새롭게 보는 세상, 동물들의 입으로 범벅된 도살장에서의 충격 등 어린 소년의 세상 바라보기는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다름 아니다.
수도 없이 겪은 침공과 점령의 되풀이 속에서도 알바니아 인의 생활은 고래로부터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해 나간다. "말세야."라고 부르짖으면서도 "이런 때에도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라고 말하며 신부 화장을 해주기 위해 전쟁터인 도시에 그대로 고집스레 남아 있는 노파도 있다.
피난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도시는 이미 독일 제국에 점령당해 있다. 돌로 이루어진, 그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는 그럼에도 의연하다. 소년은 어디로 떠나 있건 자신의 알바니아, 돌로 된 도시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진, 겨울, 아울러 인간이 불러일으킨 재앙들로 인한 흔적들과 더불어 나란히 그 돌 속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작가 카다레는, 거대한 외세의 멍에 아래 놓였던 조국 알바니아의 현실을 일상적 사실주의에 뿌리를 둔 서정적 환상으로 전개해 나간다. 정치적 현실과 신화적 상상력이 어우러지는 이스마엘 카다레의 작품 성향은 환상적인 문체와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오래된 풍속에 대한 비밀스러운 열광으로 가득 차 있다. 또한 풍부한 영감과 자유로운 문체로 상처 입은 알바니아의 민족성을 새롭게 복원해 냈다.
특히 연대기라는 '역사의 익명성'을 책의 중간 중간에 삽입하여 화자의 변화를 통해 사건의 전체 윤곽에 대한 암시를 주는 효과가 뛰어나다. 그의 작품의 소재와 주제는 조국 알바니아에 집중되어 있는데, 무겁고 암울한 현실을 진한 페이소스 속에서 사실주의적 환상감으로 표현해 내는 데 특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
매년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스마일 카다레는 1936년 알바니아 남부의 기이로카스터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53년 시집 『서정시』를 출간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알바니아 최고의 명문 티라나 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이어 모스크바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1960년 알바니아와 소련과의 외교단절 후 귀국, 문학잡지 「드리타」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6세 때 발표한 처녀작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작품은 알바니아를 침공했던 이탈리아의 장군이 종전 후 전사자를 찾으러 다른 외팔이 장군, 돌팔이 정치가, 의심 많은 사제와의 만남을 통해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그는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알바니아의 민족성을 뛰어나게 형상화하며 아울러 인간의 폭력성과 죽음의 공포 등을 철학적으로 다루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등장으로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던 알바니아의 정치적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산 독재정권하의 조국 알바니아의 혼과 집단기억을 문학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리는 그의 작품세계는 마르케스의 그것에 비견되며, 전제주의와 유토피아의 위험을 고발하는 헉슬리와 오웰의 뒤를 잇는 반(反)유토피아 가계의 마지막 후손으로 꼽히기도 한다. 우스꽝스러운 비극과 기괴한 웃음의 조화, 우화와 신비에 싸인 놀라운 이야기로 세계적 작가의 자리를 굳혔으며, 1990년 독재정권의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이래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죽은 군대의 장군』, 『돌에 새긴 연대기』, 『부서진 사월』, 『콘서트』, 『H서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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