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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일 문 학

커피향기[Der Duft Des Kaffees]

[책갈피] 2006. 12. 4. 20:01

 

커피향기[Der Duft Des Kaffees]


커피라는 것이 위에 들어가자마자 야단법석이 일어난다. 싸움터에 나선 대군의 각 부대처럼 생각들이 움직이며 전투가 벌어진다. 기억이 되살아나 질풍처럼 몰아친다.  ‘비교’라는 경기병은 훌륭한 대형으로 전진하고,  ‘논리’라는 포병은 서둘러 포와 포탄을 준비하며,  ‘비평’은 저격수처럼 사격을 시작한다. 비유가 쏟아져 종이는 잉크로 뒤덮인다.    

 - 오노레 드 발자크, <커피의 기쁨과 괴로움> 중에서


오늘은 커피를 소재로 한 작품(소설)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날씨가 차가우니까 우선 커피 한 잔을 대접해드리고 얘기를 시작해야겠네요.

 

 

이제 다 드셨으면,  아니 드시면서 이 글을 읽으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먼저 소설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커피의 역사’―커피의 문화사라고 해두지요―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 커피는 사람들이 마시는 물, 차, 우유, 술과 같은 음료 중의 하나로 세계인구의 1/3이 애음한다.  에티오피아의 카파로 추정되는 곳에서 자라던 야생의 커피나무는 남아라비아로 전파되었다가 15세기경부터 재배되었다. 커피의 진가는 14세기 말엽에 아라비아에서 커피 생두를 볶는 기술이 개발되면서였다. 화려한 변신의 순간이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이 커피를 새로운 맛의 세계로 끌어냈다.    몸과 마음을 맑게 하는 쌉쌀한 맛과 깊은 향취에 모든 사람이 매혹되었다.

◇ 커피는 특히 이슬람의 종교의식에서 대중적인 음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슬람 사제들은 커피가 사람을 도취시킨다고  선언하고 《코란》에 의거해 금지시켰다.  하지만  커피는 아라비아와 그 주변국들로 급속히 퍼졌다. 유럽에서 커피를 최초로 받아들인 곳은  오스트리아 빈이었다. 1683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빈을 공격하면서 터키 군이 가지고 왔던 원두가 빈으로 옮겨지면서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다.

◇ 커피는 17세기 중반 런던의 한 커피점에서 음료로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유럽의  까페 문화를 불러왔다.  이들 까페는 정치, 문화, 상업적 살롱이 되었으며, 기존 사회질서 내에서는 어느 곳에도 안심할만한 피난처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의 집합장소가 되었다.

◇ 1686년에 자코뱅당의 지도자 에베르가 문을 연 프랑스 파리의 카페 '프로코프'는 지금도 성업을 이루고 있다. 이 카페에 들어가면 이 카페에 드나들었던 단골 명사들, 라퐁텐느, 볼테르, 로베스피에르, 발자크, 빅토르 위고, 베르레느 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걸리버여행기》를 쓴 스위프트도 커피광이었고, 작곡가 바흐 역시 커피 칸타타를 자곡할 정도였다.    베토벤 역시 커피광이었는데 그는 커피 한잔에 커피콩 60개 씩 헤아려 갈아 마셨다.

◇ 커피에 세례를 준 교황은 클레멘트 8세이다. 유럽에서는 초기에 커피가 이교도의 음료라고 거부되었으나 클레멘트 8세는 이교도만 즐기기에는 너무 훌륭한 음료라고 해 커피에 세례를 주어 기독교인도 마실 수 있게 했다.

◇ 18세기 후반 스웨덴에는 커피에 독이 들어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황제 구스타프 3세는 사형수에게 하루에 커피를 일정량 먹이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를 몹시도 궁금해 했을 황제가 먼저 죽었다.

◇ 19세기 어느 철학자는 커피를 선정적인 지옥의 검은 음료라고 말했다. 그는 이 음료로 인해 인류는 정당한 국가의 '잠', 즉 '수면'을 탈취당하고, 불안정한 망상에 빠지며, 그 세계에서 잠들지 못한 채 뒹굴고 있다고 말했다.


『커피 향기』― 부제 : 어떤 기이한 음모 이야기― 는 커피를 둘러싼 음모와 스릴러, 그리고 동서양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커피의 문화사에 대한 내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애용한다는 커피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왜 커피를 없애려고 하는 세력들이 존재하며 무슨 이유로 없애려 하는 것일까? 라는 음모론적 상상력이 역사 발전의 과정에 대한 하나의 고찰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마시는 음료의 일종인 커피, 그러나 실제로는 이 커피가 사람을 얼마나 중독시키는지, 커피를 통해 만들어진 정치, 사회, 경제, 역사가 얼마나 엄청나고 큰 것인지 알 수 있다.

『커피 향기』는 사람들의 기호 식품인 ‘커피’를 소재로 하면서, 일상사, 미시사, 문화사에 대한 풍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우선 시선을 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에 불과한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인류의 혁명사와 연결시키는 대범한 상상력이 자리 잡고 있다.

 

 


정부의 대개혁 법안을 둘러싼 시위가 계속되는 독일에서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베를린, 함부르크, 뮌헨 등에서 커피를 마신 250여 명이 독극물에 중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영향으로 독일에서는 모든 커피 기계가 작동을 멈추고, 아무도 커피를 마시려 하지 않는다.  커피 로스터(커피 볶는 기계, 또는 기계를 다루는 사람)인 ‘한스 브리오니’의 아들도 커피 독극물의 희생자의 한 사람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 간다.  한스 브리오니는 커피 애호가 정도가 아니라 커피 숭배자이다. 커피콩이 에티오피아 고지대에서 거둬들인 것인지, 콜롬비아의 악천후 속에 거둬들인 것인지, 무엇이 가장 좋은 품종인지를 한스 브리오니의 혀는 귀신같이 식별해낸다. 그는 베를린에 커피 전문점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볶아서 브랜딩한 커피를 팔며 ‘동양의 포도’라고 하는 커피에 온갖 열정을 다 쏟는다. 하지만 독이 든 커피콩을 앞세운 어떤 음모가 이 커피 애호가의 삶을 바꿔놓는다.  경찰이 범인을 밝혀내기 위해 암중모색을 하는 동안 브리오니가 범인임을 암시하는 몇 가지 단서가 나온 것이다. 텔레비전 방송국의 햇병아리 여기자 ‘아가테’는 독극물 사건의 본질을 알아내기 위해 브리오니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아가테와 브리오니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베를린에서 중부 유럽을 가로질러 커피 집들의 도시인 빈으로 간다. 이 여행 중에 두 사람은 커피가 지난 250년 동안 정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게 된다. 그들은 『커피 박탈 영향에 대한 연구서』와  ‘시간 늦추기 협회’라는 이상한 이름의 단체와 그 밖의 이상한 것들을 접하게 된다. 

브리오니가 소설 속에서 주장하는 바는 계몽과 혁명의 순간에는 항상 커피가 있었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이런 현상을 염두해 두면서  ‘사람들에게서 커피를 빼앗음으로서 이 사회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정부의 대개혁 법안 처리는 다가오고, 국회의 커피기계가 싸늘하게 식은 가운데, 야당 직원들은 졸고 있고, 여당 사무실에서는 커피 향기가 났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 상황 하에서 브리오니와 아가테는 사건의 진실에 점점 더 다가간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가속의 시대를 살고 있다. 속도를 높이지 않는 사람, 정지해 있는 사람은 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오래전부터 경제는 속도를 생명으로 여기고 있다.  더 빨리, 더 좋게, 더 많이, 경제는 성장을 요구하고, 성장은 가속을 요구하고, 가속은 힘과 시간과 목숨을 요구한다. '더 빨리 살아라, 그러면 더 빨리 끝난다!'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끊임없이 속도를 높이고자 하는 욕망 뒤에는 죽음에 대한 은밀한 동경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묘하게도 끊임없는 성장을 통해 시간의 한계와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숨겨져 있다. '더 빠를수록 더 활기차다!'라는 생각은 가속으로 노화와 죽음을 몰아낼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이다. 우리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오류인 셈이다.  따라서 속도에서 벗어나자! 삶으로 돌아가자! 지금 여기에서!

 

이 소설에서는 세상의 빠름에 대한 모든 이유를 커피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커피가 가지는 속성을 통해 현대사회의 조급함과 커피에 속박당한 이 사회를 겨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됨으로써 멍해져버린 사회와 의욕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을 조롱한다. 『커피 향기』는 항상 깨어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깨어있음을 당연시하고, 그래야만 사회의 구성원의 역할을 한다고 믿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의 대한 풍자를 그리고 있다.


커피의 맛과 향기의 세계는 미세하고 섬세한 분야여서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맛과 향을 찾으려는 꾸준한 노력과 소망으로 가득한 마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커피의 영혼과 교감이 있어야 한다.

커피 추출자의 손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장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지고 영혼이 교감되어질 때, 커피는 미로의 세포조직을 열어 흐르는 물줄기를 자신들의 영혼으로 안내한다.


하루에 커피를 몇 잔이나 드세요?   저요?    5~7잔 정도요.


[저자 소개 :  르하르트 J. 레켈]

1965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빈 영화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그 후 중국, 인도, 라틴아메리카 등지를 여행했다. 뮌헨 시나리오 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부터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방송극, 다큐멘터리, 영화 시나리오 등을 집필했다. 1992년 동경국제영화제 최고 각본상을 받았으며, 브리티시아카데미 영화·텔레비전 예술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희곡도 다수 집필했는데, 그 중 는 제1회 유럽 극작가 대회에서 최고의 오스트리아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또 다른 작품인 『마키아벨리의 여자 안마사』는 2004년 작가의 날에 함부르크 탈리아테아터 심사단이 뽑은 최고의 차세대 작품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작품에 텔레비전 극본 『닭싸움』, 『쌉싸름한 초콜릿』과 소설 『복수』, 『닭싸움』, 『커피 향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