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조르를 찾아서(En busca de Klingsor)
클링조르를 찾아서(En busca de Klingsor)
‘클링조르’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
티투렐은 그의 주위에 순결을 맹서하는 일단의 기사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그들 중 하나인 클링조르가 그러한 엄격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없게 되어 스스로 포기하고 이 기사단에서 탈퇴하였다. 그는 매혹적인 여인들로 가득한 요술정원을 만들고, 그녀들로 하여금 성배의 기사들을 유혹시켜 그들이 정의의 길을 가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였다. 티투렐의 아들인 암포르타스 조차 그들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신성한 창을 클링조르에게 빼앗기고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부상을 입어 고통 받게 된다.
오직 한 사람만이 그를 고칠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자비의 지혜로 만들어진 순수한 바보"라 일컬어지는 파르지팔(Parsifal)이다. 이 순순한 기사의 힘으로 잃어버린 창을 다시 찾아오고 일련의 여러 고초를 겪은 후에 이윽고 암포르타스의 곪아 터진 부상을 치료한다. 그런 후 구르네만츠의 축복을 받으면서, 파르지팔은 마침내 성배의 기사를 지휘하는 자리에 부름 받는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과학의 진실 또는 과학자의 진실 게임]
<호르헤 볼피>의 『클링조르를 찾아서』는 양자물리학과 나치독일의 원자폭탄 제조계획을 소재로 하여 20세기 초.중엽 시기의 과학의 이면사를 자세히 풀어 나간다.
이 소설 속에서 ‘클링조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원자폭탄 제조에 깊이 관여했던 한 과학자의 암호명이다.
전쟁이 연합국 측의 승리로 끝난 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정에서 한 피의자가 언급한 한 마디―“제3제국의 학술적 연구는 ‘클링조르’라 불리웠던 제국학술연구위원회 총책임자에 의해 계획/승인되고 통제되었다”―가 단서가 되어 미국전략정보처(OSS)에서는 베일에 쌓인 ‘클링조르’의 실체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그 임무를 부여 받은 사람은 물리학자 출신의 미군 장교 프랜시스 베이컨 중위. 그는 독일 수학자 구스타프 링스의 도움을 받아 클링조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20세기 내로라하는 유명한 과학자들을 대거 만나게 된다.
양자론의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 상대성이론의 주창자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파동이론과 양자역학의 에르빈 슈뢰딩거, 집합론 공리와 선택공리 및 일반화된 연속체 가설 사이의 무모순성을 주장한 쿠르트 괴델, 원자구조론의 닐스 보어,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베르너 하이젠베르그 등이 그들이다.
소설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제논의 거북이 비유(제논의 역설), 크레타의 거짓말쟁이 역설, 에른스트 슈뢰더의 동시에 살아 있고 죽은 고양이 우화 등의 다양한 논리와 양자이론 등의 물리학이론과 수학의 공식을 다룸으로써 읽는 이에게 유쾌한 지적 체험을 안겨준다.
실존 인물들이 소설 속으로 들어오면서 이 작품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교묘하게 결합된 ‘팩션’으로 변화되면서 복잡한 논리적 퍼즐 게임을 푸는 것과 같은 서술구조를 취한다.
저자는 한때 나치 시절 행적이 불분명했던 하이젠베르크를 원자폭탄 제조를 주도한 인물이라는 시각을 내세우지만 이내 이를 부정한다. 비록 명백한 증거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나치에 대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태도는 적어도 미심쩍은 부분이 상당히 많아 여전히 상반된 해석이 존재한다. 그가 전쟁 중에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과학자의 연구 행위가―물론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 앞에 과연 어디까지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학자로서의 품위와 양심이 국가주의와 충돌한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인 <마르케스>는 이 작가를 두고 “나보다 나은 유일한 작가에게 축하를 보낸다.”고 했으며, 또 다른 중남미 작가인 <푸엔테스>는 “이제 내 후계자를 찾았으니 마음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평했다. 글쎄다. 더 두고 볼 일이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이제 겨우 한 권 읽어 본 나로서는 이런 평에 뭐라 말하긴 이르지만, 법학과 문학을 공부한 그의 이력에서 나오는 내공은 만만찮은 실력자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호르헤 볼피(Jorge Volpi)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법학과 문학을 공부한 뒤 스페인의 살라망카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2년부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검은 침묵에도 불구하고(A pesar del oscuro silencio)』(1992), 『분노의 나날들(Días de ira)』(1994), 『묘지의 평화(La paz de los sepulcros)』(1995), 『우울증(El temperamento melancólico)』(1996), 『1968년 지식의 역사(Una historia intelectual de 1968)』(1998) 등이 있으며, 이 책 『클링조르를 찾아서(En busca de Klingsor)』로 라틴아메리카 문학상인 '간이도서상'을 수상했다. 현재 멕시코문화담당관으로 파리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