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혁명
수소(Hydrogen)혁명
‘국제유가( 油價)’에 관한 최근의 한 신문 기사 내용을 들여다보자.
※ 최근이라 했지만 사실은 한달 전 기사다.
[국제 유가가 ‘이란 쇼크’로 심리적 저항선인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하면서 추가적인 상승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만성적인 고유가 전망이 대세여서 각국마다 주요 산업에 끼칠 영향 분석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원유 수요보다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구조적 이유 탓에 유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8일 “유가 상승 요인이 더 커지고 있다”며, 올해 연간 평균 유가 전망치(서부텍사스산 중질유 기준)를 배럴당 5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메릴린치는 애초 2분기 유가를 51달러로 예상했으나 이를 54달러로 올렸고, 3분기 유가는 평균 59달러 수준으로 전망했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원유 수요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며, 유가가 배럴당 85달러 수준에 도달하기 전까지 석유 소비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3월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이 1970년대의 ‘오일 쇼크’에 견줄 수 있는 이른바 ‘슈퍼 스파이크’ 초기 국면에 진입했다며, 유가가 배럴당 50~105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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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우리 문명사회는 화석연료-석유,석탄,천연가스-가 없으면 하루라도 제대로 버텨내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지적이다. 당장에 화석연료의 공급이 중단된다면 모든 운송수단은 멈추고, 전기는 끊기고, 통신은 두절되며, 병원 등 필수시설은 문을 닫고, 산업생산은 중단되며 세상은 곧 암흑세계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 1996년 미국 오리건주와 1997년의 뉴욕의 단 몇시간 동안의 정전사태로 야기된 폭동과 약탈 등의 사태를 들 수 있겠다. 이 사태로 인해 우리는 화석연료의 공급중단으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화석연료, 특히 석유가 가지는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국제유가의 등락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각국의 경제운용방향과 성장률을 결정하고 국제질서를 재편한다. 현시점에 있어서 화석연료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필수자원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인류문명의 지탱자이자 파괴자가 될 수도 있는 화석연료로부터 우리는 좀 더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 것일까?
‘석유시대의 종말과 세계경제의 미래’라는 부제가 달린 <제러미 리프킨>의 『수소혁명』은 이러한 물음에 희망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해법의 키워드는 바로 수소이다. 이미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는 이 책에서 이제 빠른 속도로 화석 연료 시대는 막바지에 이르고 바야흐로 '혁명적인 수소 에너지' 시대의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지질학자들도 석유자원이 몇 십년 안에 고갈될 것이며 얼마 남지 않은 석유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중동에만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인류사의 발전을 토인비는 역사의 전진으로,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규정하였으나 <리프킨>은 사회동력의 변환사, 즉 에너지의 변천사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사회의 흐름을 주동하는 에너지의 변천사였다는 것이다.
최초의 에너지 동력은 단순한 인간의 육체였고 그러한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인류의 발전 단계는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더 많은 인간의 육체를 절대권력이 이용하는 노예제 사회로 이행하였다. 노예제 사회로부터 소유주보다도 더 많은 노예들이 더 이상 사회의 건전한 동력으로 사용되기 어려워짐에 따라 노예를 해방하고 그 노예를 토지경작의 소작농으로 전환하면서 부터 중세 농노제 사회가 전개되었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연합군의 승리와 미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동력체제 또한 석유에너지를 점유한 군산 복합체 기업의 경제학적 토대였던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서구 사회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역사에 기록된 다른 모든 사회를 합해 산출한 1인당 에너지 소비량보다 많았다.
현대인은 전례 없이 높은 생활 수준을 구가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운은 수백만 년 전 형성된 화석 연료 덕이다. 이 책은 ‘인류의 현대문명이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전했지만 이를 지속할 경우 에너지원의 고갈과 지구온난화라는 이중의 문제를 맞을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석유 자원시대는 곧 종말을 고하고, 이를 대체할 강력한 새 에너지 체계로 수소 자원이 주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수소는 우주의 무한한 에너지원이다. 우주의 기본 구성원소 질량의 70%가 수소이며 분자구성량은 90%에 달한다. 지구의 70%에 달하는 바닷물도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수소는 지구상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이다. 적절한 가공을 거친 수소는 마르지 않는 '영원한 연료'이며 이산화탄소와 같은 공해 물질을 배출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한 기후이상과 대재앙을 예방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수소에너지가 가진 또 하나의 선물은 그것이 에너지화되는 방식자체가 분권적이고 민주적이라는 것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은 그 생산이 집적적이고 집중적이기 때문에 많은 자본이 필요하고 따라서 본질상 중앙집권적인 방식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소에너지는 그 생산이 지구의 곳곳에서 소량씩 채취할 수 있으며 따라서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수소에너지를 둘러싼 인간관계의 그림에 따라 그것이 우리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또 다른 무기로 바뀔 수도 있으나 그 본질상 다수의 시민들에게 그 권한을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다.
<리프킨>은 ‘수소 에너지망(HEW)’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에너지라고 말한다. 누구나 소비자인 동시에 잠재적인 에너지 공급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값도 저렴해 제3세계 국가들도 부담없이 사용할 수 있다. 수소 에너지 시대에는 연료비 부담이 적어 세계 권력 구조도 변화될 것이라 보았다.
수소를 연료화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수소를 연료전지에 주입해 전기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수소의 추출, 저장, 이용을 위한 시간, 노동, 자본이 요구된다. 하지만 수소는 화석 연료와는 달리 세계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데다 공급량도 무한해서 생산비용은 계속 감소하여 결국 '제로'에 가깝게 될 것이다. 분산전원과 HEW는 1980년대 후반의 인터넷처럼 현재는 걸음마 단계에 있다. 하지만 분산전원 운영자들이 한데 결집하여 수소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이미 다국적 기업을 위주로 수소엔진 및 수소에너지 개발에 20억 달러 이상의 엄청난 돈이 투여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및 일본의 유수 자동차업체들은 수소 에너지 차량의 상용화를 확신하고 있고, 각국의 정부들도 수소 에너지 개발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있다.
2002년 10월, 유럽 위원회 집행위원장 로마노 프로디는 유럽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석유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제 유럽은 풍력, 태양력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이용한 수소 연료전지로부터 전력을 얻을 것이며, 이 수소 에너지가 곧 공해를 많이 배출하는 기존의 화석 연료를 대체할 것이다. 그리고 EU는 2010년까지 재생 가능 자원으로부터 얻은 전력이 전체 전력 사용의 22퍼센트, 전체 에너지원의 12퍼센트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이렇게 된다면 환경 문제뿐 아니라 경제 및 지정학적 문제도 해결이 된다".
전적으로 석유를 수입에 의존하고 에너지 자급도가 낮은 우리나라의 실정으로서는 수소연료야말로 피할 수 없는 대안임에는 틀림없다. 중동의 정치 불안이 가중될 때마다 늘 먼저 걱정하는 것은 석유비축량과 유가이다. 심각한 이런 에너지종속관계에서는 늘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으며 경쟁운용의 폭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과 미래의 에너지 수급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수소연료에 대한 기술개발에 과감하게 투자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저자 소개]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특히 『노동의 종말』(1995)은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노동 시간 삭감을 위한 사회 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고, 『바이오테크 시대』(1998)는 생명공학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제기하여 사회적 경각심을 환기시켰다. 그는 또 『소유의 종말』(2000)에서는 '소유의 시대'는 가고 '시간과 체험의 상품화'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리프킨은 세계 각국의 500여 개 대학교에서 초청되어 과학 기술의 새로운 조류와 그것이 세계의 경제, 사회, 환경에 미치는 여향에 대해 강의했고, 1994년부터 워튼 경영대학원(Wahrton School) 최고경영자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부의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행사할 뿐 아니라 유수기업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경제 교류 재단Economic Trends'을 설립하여 사회의 공공 여역을 수호하기 위한 계몽 운동 및 감시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