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 문 학

칼의 노래

[책갈피] 2005. 8. 11. 08:22
 

노래


역사소설은 지난 날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재현시켜 현대적 과제를 추구하는 향을 띈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주제의식이다.  역사인물에 대한 단순한 재해석은 소설의 옷을 입은 역사책에 불과하다. 작가적 역량이 돋보이는 역사장편소설을 통해 우리는 역사의 정체성에 접근해 볼 수 있다.

  

 <김훈>의 장편소설 『칼의 노래』는 2001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했던 시도로 무장 이순신의 생애를 실존적 고뇌자로 그려낸 최고의 소설"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10여년전 『난중일기』를 읽고 받은 감동을 간직하고 있던 작가가 자전거 ‘풍륜’을 타고 전국 산천을 누비다가 진도에 들렀을 때 이순신이란 인물을 소설로 쓰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그 다음 겨울에 작가는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을 여러번 찾았다.

<김훈>은 그 곳에서 장군의 큰 칼을 보았다.  차가운 큰 칼을......혼자서 하루 종일 장군의 칼을 들여다 보다가 저물어서 돌아왔다고 했다.그는 책머리에 “사랑은 불가능에 대한 사랑일 뿐이라고,그 칼은 나에게 말해주었다.영웅이 아닌 나는 쓸쓸해서 속으로 울었다.이 가난한 글은 그 칼의 전언에 대한 나의 응답이다”라고 적었다.


작가는 역사소설의 옛스럽고 유장한 문체를 사용하는 대신 짧고 현대적인 어휘를 택했다. 사실 절제된 문체는 그의 장기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비장하며, 집중력이 있어 '칼이 부르는 노래'를 감당할 만하다.

골동품 항아리를 세련된 포장지로 싸놓은 듯이 불균형이 기이하지만, 400여년 전 장군의 고뇌를 현대인이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장치다. 그의 또다른 작품 『현의 노래』에서도 이런 이미지는 이어진다.


소설은 충무공이 백의종군(1597년)하는 시기부터 노량해전에서 목숨을 잃을 때(1598년)까지 2년간의 이야기다. 나라에서 버림받고 다시 전장에 나섰으나 앞 첩첩 적이 쌓여 있으니, 나아가도 죽을 것이고, 물러서도 죽을 것이 분명한 한 남자의 운명이 이 시절에 압축되어 있다.

전장에서 지면 당연히 죽을 것이지만,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정치적인 이유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한 사나이의 내면을 통해 작가는 존재 자체가 비극인 무사의 길을 말하고 있다.


이순신 자신의 1인칭 서술로 일관된 시점을 통해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무의미와 그것의 폭력성,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무장으로서의 고뇌,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꼼꼼한 전투 준비와 전투 와중의 급박한 상황, 풍경과 무기, 밥과 몸에 대한 사유 들이 채색된다.

이순신에겐 왜군만이 적이 아니라,임금과 조정에 들끓는 관료가 다 적이다.백성들도 고통스런 부담을 안겨주는 존재들이다.1인 대 만인의 싸움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소설이 아니라 끝까지 싸우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이순신이란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백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이순신은  칼의 삼엄함과 무(武)의 단순성이 최고도로 발현된 개념적 인간으로 묘사된다. 극도로 통제되고 절제된 이순신의 생의 국면을 끌고가는 김훈의 문체는 실존적 사유는 물론 집중력에 있어서도 전범을 찾을 수 없는 정도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 소개>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지은 책으로는 독서 에세이집『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문학기행1,2,』『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 장편소설『빗살무늬 토기의 추억』등이 있으며, 외국 문학을 여러 권 번역했다. 그에게는 생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생의 긍정을 배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이 따른다.

김훈은 52세의 나이에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타고서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전국의 산천을 누볐다. 안면도, 쌍계사, 여수, 선암사, 부석사, 섬진강, 태맥산맥 등 많은 여행지들에서 보고 느낀 김훈의 사유들이 이강빈의 사진과 함께 『자전거 여행』으로 묶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