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Le)memzogne della notte]
그날 밤의 거짓말
우리가 흔히 아는 심리학 게임이론 중에 “죄수의 딜레마”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간단히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갑'과 '을'이라는 두 사람이 절도죄로 경찰에 붙잡혀 있습니다. 혐의 내용은 이 두 사람이 함께 부잣집에서 고가의 물건을 훔쳤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일단 이 두 사람을 체포는 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경찰이 두 사람을 기소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중 한명 이상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만일 누구에게도 증언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경찰은 이 두 사람을 풀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경찰은 '갑'과 '을'을 격리시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만일 네가 증언을 해준다면 우리는 너에게 1년형을 살게 배려해주겠다. 하지만 만일 너의 동료가 먼저 증언을 한다면 너는 10년형을 살고, 너의 동료는 1년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아라" 하구요.
상황을 정리하면
'갑'이 범행을 시인하고 을이 범행을 부인하면 → 갑 : 1년, 을 : 10년
'갑'이 범행을 부인하고 을이 범행을 시인하면 → 갑 : 10년, 을 : 1년
'갑'과 '을'이 모두 범행을 시인하면 → 갑과 을 모두 각각 5년(공범 관계)
'갑'과 '을'이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 갑과 을 모두 무죄 석방(증거 불충분)
자, 이렇게 되면 두 사람은 어떤 선택과정을 겪게 될까요?
'갑'과 '을'은 각각 생각합니다. 각각에게 있어서 최선의 선택은 함께 범행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다면 범행을 부인하면 됩니다. 하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상대방에 대한 '의심'이 생겨납니다. '나는 참았는데 저 녀석이 나를 배신하면 어떻게 하지? 그럼 나만 손해보는 거 아냐?' 라는 의심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갑'과 '을'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들의 최선의 선택은 함께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최악의 선택은 한쪽이 '시인'하고 한쪽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신뢰가 마음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음의 결정을 합니다. 둘 다 함께 범행을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확실한 신뢰가 없을 경우, 사람들은 선택에 있어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최악의 결과를 회피하는 선택(상대방이 시인하고 자신은 부인하는 경우)을 하게 되고, 그것이 곧 전체 상황에 있어서 최선의 선택은 할 수 없게 되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선택을 피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죄수의 딜레마'의 가장 큰 핵심입니다.
이탈리아의 작가 <제수알도 부팔리노>의 그『그날 밤의 거짓말』은 바로 ‘죄수의 딜레마’에 나타난 수인들의 심리상태를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시칠리아 왕국의 한 외딴 섬에 있는 요새 감옥이다. 국왕 암살 음모에 가담한 죄로 체포된 네 명의 사형수가 이튿날의 처형을 기다리면서 마지막 밤을 보내면서 이야기한 내용을 주제로 한다. 네 명의 면면을 보자면 귀족 출신인 혁명가 인가푸 남작, 국왕과 교회를 풍자한 시로 유명한 살린베니, 군인 출신의 폭파 전문가 아제실라오, 그리고 가장 어린 반항아 나르치조이다. 교도소장은 네 사람에게 ‘한 사람이라도 음모의 배후 인물을 밀고한다면 그들 모두에게 사면이 주어질 것이다’라는 유혹같은 제안을 한다.
이들은 잔인한 도둑이자 날카로운 지성으로 소문난 ‘치릴로’ 수도사와 함께 점칠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그들의 죽음의 공포를 떨치고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생의 마지막 밤과 맞바꿀만한 각자의 추억담을 차례로 펼친다.
이들의 얘기 속에서 국왕 암살음모의 주동자―소위 '살아있는 신'―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혀가게 된다.
왕을 쉽게 접견할 수 있는 고위직이며, 정의로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등이……
그가 바로 왕의 동생이자 명망 높은 후계자 시라쿠사 백작으로 판명나는 순간에, 치릴로 수도사는 얼굴을 가리고 있던 수도복을 벗는다. 드러난 면모는 바로, 교도소장의 얼굴이다. 이들은 경악하게 되고 교도소장은 이들을 비웃는다. 당연히 네 명의 운명과 함께 시라쿠사 백작도 사형당하고……
그런 후 어느 날, 교도소장은 네 죄수의 과거를 우연히 알게 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날 밤 그들의 얘기는 모두 다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물론 시라쿠사 백작이 혁명군의 지도자란 것도……
어쩌면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도 많은 부분 잘못되거나 너무 성급한 판단의 결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실은 단편적인 지식에 의한 건 아날까? 그리고 그렇게 성급한 판단을 내려버린 이유가 더 오래 생각하고, 더 치열하게 바닥을 보는게 귀찮아서, 혹은 두려워서, 그냥 아무거나 빨리 믿어버리고 싶기 때문은 아닌지?
※ 이책이 최근에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역자에 의해, 다른 표지를 달고 재출간 되었습니다. 그래서 표지 이미지도 새 표지로 수정해 봅니다.
저자 <제수알도 부팔리노>는 1920년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섬에 있는 코미소에서 태어났다. 시칠리아 섬에서 그는 카타니아대학교와 팔레르모대학교에 다녔으나,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에 입대해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게릴라 부대에 가담해 싸우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 가까스로 탈출했으나 은신처에서 결핵에 걸렸고, 전쟁이 끝난 뒤 요양소로 보내졌다. 1947년에 부팔리노는 고향 시칠리아로 돌아갔다. 이후 번역가와 교육가로 지내다가 1981년 환갑을 넘어선 나이에 소설로는 처녀작인 『페스트를 퍼뜨리는 사람(기름칠쟁이 이야기)』를 친구인 소설가 레오나르도 샤샤의 도움으로 출간하게 된다. 요양소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으로 그는 ‘캄피엘로 대상’을 받았다. 이어 시칠리아의 생활을 반영한 에세이집인 『유령 박물관』(1982)과 장편소설 『눈먼 아르고스』(1984)를 출간했다. 단편집 『침입자』(1986)는 심오한 경지에 이른 탁월한 솜씨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8년에 발표된 『그날 밤의 거짓말』은 금세기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의 하나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각종 문학상의 후보 물망에 올랐으나, 문학상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작가의 태도가 문제가 되었으나, 출판사측의 설득으로 겨우 스트레가 문학상 후보가 되는 것을 허락 받아 이 상을 수상하게 된다. 참고로 스트레가상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에코>의 『장미의 이름』도 수상한 바 있다. <부팔리노>가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후보자들이 스스로 사퇴를 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그 밖의 장편소설로는 스릴러인 『Qui pro quo』(1991)와 『무기 연기 』(1990)가 있으며, 교통사고로 생애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