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2005. 8. 11. 08:09
 

홍어

 

 이 소설은 궁핍했던 우리의 지난 시절을 배경으로 하여, 집을 나가버린 가장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소년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외부와 단절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소설은 홀어머니와 13살 소년이 사는 집에 떠돌이 소녀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폭설로 방문조차 여닫을 수 없는 한겨울 아침 주인공 세영은 부엌으로 숨어든 거렁뱅이 소녀를 발견한다.

 

    

 


소녀에게 삼례라는 이름을 붙여준 어머니는 일손을 도우러  온 친척이라는 명목하에 한 식구로 삼는다.  그러나 어머니  대신 집안 일을 도맡아하던 삼례는 몽유병 탓에 매일 밤 눈길을 헤매다 어느 날 말없이 사라진다.

삼례가 다시 밤 도망을 한 뒤 남편이라는 사내가 찾아오고  그가  떠나자 이번에는 삼례가 읍내 술집 작부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사람이란 염치를 먹고 사는 짐승”이라며 삼례에게 언젠가 아버지를 찾아 나설 때 쓰려고 모아둔 돈을 쥐어  마을을 떠나게 한다. 체면보다 더 급한 것은 이미 사춘기어든 아들의 삼례를 향한 흔들림이었다.

 

아이 업은 여자가 세영 모자의 집을 찾은 것은 그 얼마 후. 여자가 버리고 떠난 젖먹이는 세영의 아버지가 바깥에서 낳은 아들이었고 아버지의 귀가를 알리는 전조였다.  마침내 7년 만에 '홍어'라는 별명을 지닌 아버지가 돌아온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온 이튿날 아침, 눈밭에 신발을 거꾸로 돌려 신은 발자국만 남기고 집을 떠난다. 오래 전 삼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방을 밝히지 않으려는 부재증명만을 남긴 채........

어머니는 어째서 그린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아버지의 환상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때 놀랍게도 그것은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어머니의 지순했던 자존심은 오히려 굴욕으로 손상되고 말았고 슬픔에 찌들어가면서도 담금질해왔던 사랑의 열매도 한낱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래서 어머니는 굴욕보다 더욱 격정적인 세상으로부터의 모험을 선택한 것일까? 바람난 암코양이처럼 밖으로 나도는 삼례를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모질게 단죄했던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작부가 된 삼례를 떠나보낸 뒤  “나도 삼례를 따라 떠나고 싶었데이. 몸은 개천에 빠져 있는데, 마음은 항상 구름과 같이 떠다녔제”라고 어린 아들에게 고백하지 않았던가. 이제 노년에 접어든 어린 아들의 분신, 길 위에서 세월을 견뎌낸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도 그것이었으리라. “떠남과 붙듦이 애잔하게 얽혀있는 것, 그게 인생이 아니겠는가? 라고........”

 

작가 김주영은 1939년 경북 청송에서 출생했고, 서라벌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1971년 『월간문학』에 「휴면기」가 당선되어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글쓰기를 계속하여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있다. 『객주』, 『아들의 겨울』, 『천둥소리』, 『활빈도』, 『거울 속 여행』, 『화척』, 『야정』, 『홍어』, 『아라리 난장』, 『김주영 중단편전집』 등을 냈다. 한국소설문학상, 유주현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이산문학상,  무영문학상, 그리고 이 소설 『홍어』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