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작가 단편선

사실은 너무 가난해서 - 후안 룰포

[책갈피] 2005. 8. 10. 21:39
 

사실은 너무 가난해서

 

후안 룰포 

 

갈수록 태산이다. 지난주에는 하신타 숙모가 돌아가셨다. 토요일, 그러니까 숙모 장례식을 치르고 슬픔을 잊을만했을 때 예전에 없이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애가 탔다. 보리를 널어놓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빗줄기가 쏟아지고 큰물이 지는 바람에 보리 한 줌 건질 틈도 없었다. 우리 식구는 오두막집 밑에서 얼마 전에 수확한 노란 보리가 하늘에서 떨어진 찬비를 맞고 새까맣게 썩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였다. 우리 소가 강물에 떠내려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얼마 전 아버지가 열 두 번째 생일을 맞이한 여동생 몫으로 지정해준 소였다.

삼일 전부터 강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새벽녘이었다. 나 같은 잠꾸러기도 강물이 우르릉거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얼마 놀랐는지 베개를 안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집 천장이 무너진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잤다. 강물 소리라는 것을 알았고, 또 한결같은 소리였으므로 다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하늘은 온통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린 모양이다. 강물 소리는 이전보다 더욱 커졌고, 한결 가깝게 들렸다. 썩는 냄새가 났다. 요동치는 강물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였다.

집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강이 넘치고 있었다. 강물은 큰길에서 넘실거렸고, '북쟁이 여자' 집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가축 우리로 들어갈 때는 철썩거리던 물살이 거세게 대문을 밀고 쏟아져 나왔다. '북쟁이 여자'는 이미 물바다가 되어버린 집안을 오가며 닭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어디든지 강물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하라는 것이다.

  

강 건너편 물굽이를 보았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하신타 숙모집 타마린도 나무[주. 열대지방 물가에서 자라는 나무. 열매로 음료수를 만든다.] 강물이 휩쓸어 가버렸는지 흔적도 없었다. 우리 마을에 타마린도 나무는 그것뿐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지금 불어난 강물이 수년 동안 흘러온 강물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았다.

  

여동생과 나는 오후에 다시 물 구경을 나갔다. 강물은 갈수록 시커멓게 변했고, 다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차 올랐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 구경을 했다. 그리고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저 아래 강물 옆에서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일로 웅성거리고 있는데,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 놀리는 모습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갔는데,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강물을 쳐다보며, 수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소가 강물에 떠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귀가 하얗고 눈이 아주 예쁜, 여동생의 소였다. 아버지가 여동생 생일을 맞이하여 여동생 몫으로 지정해준 소였다.

  

나는 평소의 강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으나 우리 소가 강물에 떠내려간 이유를 모르겠다. 우리 소는 그렇게 멍청한 소가 아니다. 잠을 자고 있다가 변을 당한 게 틀림없다. 내가 여러 번 우리 문을 열어주었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마치 잠자는 것처럼 숨을 쉬면서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조용히 우리 속에 있었을 것이다.

  

우리 소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세찬 물살이 등줄기를 후려칠 때 잠이 깼을 것이다. 그때 깜짝 놀라서 우리를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둘러보니 사방이 막혀 있고, 세찬 물살에 휘말려 발버둥쳤을 것이다. 도와달라고 울었을 것이다. 얼마나 울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 우리 소가 강물에 떠내려 갈 때 혹시 송아지를 보았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다만 자기가 있던 곳 근처에서 얼룩배기 소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한바퀴 뱅글 돌더니 뿔도 다리도 사라져버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또 뿌리째 떠내려오는 나무가 너무 많았고, 자기는 땔감을 꺼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무인지 가축인지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것이 전부다. 송아지가 살았는지 아니면 어미 소와 함께 강물에 떠내려갔는지 알 수가 없다. 만약 강물에 떠내려갔다면 주님이 잘 보살펴 주기를 바란다.

우리 집 가난은 내일 일이다. 당장 급한 것은 여동생은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해서 여동생 몫으로 송아지를 장만해서 길렀다. 조금이라도 재산이 있으면 두 언니들처럼 몸을 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누나들이 몸을 망친 것은 모두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하고 또 성질이 온순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누나들은 어릴 적부터 불평이 많았다. 그리고 자라서는 안 좋은 남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짓을 배웠다. 한밤중에 휘파람 소리가 나면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었다. 나중에는 대낮에도 집을 나갔다. 날마다 물을 길러 강으로 갔다. 가끔씩 나이가 조금 적은 녀석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 우리에서 빨개벗고 뒹굴었다. 두 녀석이 각자 누나를 올라타고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누나들을 내쫓았다. 처음에는 무던히도 참았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집밖으로 내쫓았다. 누나들은 아율타[주. 멕시코 할리스코 주의 도시]로 떠났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아무튼 몸을 팔고 다닌다.

  

아버지는 이런 일 때문에 무척이나 속이 상했다. 이번에는 여동생 때문이다. 누나들 꼴 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는데, 소가 없어졌으니 여동생에게 무슨 낙이 있으며, 또 무슨 수로 좋은 남자와 결혼해서 사랑 받고 산다는 말인가. 이제는 어렵게 되었다. 소가 있을 때는 사정이 달랐다. 여동생하고 결혼할 사람이 없지 않았다. 여동생을 데려가면 아주 예쁜 소도 함께 데려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우리 집 식구들은 송아지라도 살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제발 어미 소와 함께 강물에 휩쓸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여동생이 몸을 파는 일은 아무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원치 않는 일이다.

우리 엄마는 왜 주님이 두 딸에게 그 같은 벌을 내리셨는지 도무지 까닭을 모른다. 외갓집에는, 외할머니부터 지금까지 그런 나쁜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들 어려서부터 주님을 두렵게 여겼고, 순종적이며, 누구에게도 건방지게 굴지 않았다. 모두들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딸들이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보고 무슨 나쁜 짓을 했는지 돌이켜 보아도 행실이 나쁜 딸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태어난 까닭을 모른다. 어머니는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다. 그리고 누나들 생각이 날 때마다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주님 우리 딸들을 보살펴주소서."

  

그러나 아버지는 이제 소용없는 일이라고 한다. 눈앞에 있는 여동생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오코테[주. 소나무의 일종]처럼 쑥쑥 커가고, 또 앞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꼭 누나들처럼 봉긋하고 터질 듯한 젖가슴이 될 터라 뭇시선을 끌 것이란다.

  

“ 보는 사람마다 욕심을 낼 거야. 그리고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니겠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해. ”

 아버지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속이 탄다.

  

여동생은 자기 소가 강물에 휩쓸려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운다. 여기 내 옆에서 장미색 옷을 입고 저 아래 강물을 쳐다보며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얼굴에 더러운 물이 줄줄 흐르는 꼴이 꼭 강물이라도 먹은 듯싶다.

나는 여동생을 껴안고 달래보지만 막무가내다. 갈수록 더 운다. 온몸을 뒤흔들며 소리를 지른다. 꼭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는 강물에서 나는 소리 같다. 저기 강물에서 풍겨오는 악취가 눈물로 범벅이 된 여동생 얼굴에 스며든다. 여동생 가슴은 쉴 새없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금방이라도 부풀어올라 타락의 길로 접어들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