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농담
<밀란 쿤델라>의 『농담』은 그에게
영광과 상처를 동시에 안겨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인하여 모국인 체코의
교수직에서 쫓겨나야 했고, 또 그의 작품 모두가 출판 금지가 되는
비운을 겪었지만, 반대로 이 작품이 프랑스어로 출간되면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이 소설은 스탈린주의라는 광기에 휩싸였던 시대를 그리고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항상 중심 배경이 되는 장소는
그의 모국인 체코이다. 한 청년(루드빅)의 지극히 사적인 농담이
사회적 검열의 그물망에 걸려들었고, 그 대가는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루드빅은 대학에서 추방당하고 수용소와 강제 노역장을 전전하다가 중년의 나이에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 농담 한마디가 한 사람을 이처럼 철저히 파괴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정말 농담 같은 소설이다.
『농담』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서술 방식을 지니고 있다. 구성면에서 주인공 한 명이 자기의 내면세계를 서술하는 일반적인 형식을 답습하고 있지는 않다. 7부로 구성된 이 소설에서는 네 명의 서술자―루드빅, 헬레나, 야로슬라브, 코스트카―가 교대로 바뀌어 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어 어떤 때에는 누구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파악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때가 있곤 하다.
루드빅은 1, 3, 5, 7부의 화자로서 중심인물이며, 헬레나는 2, 7부, 야로슬라브는 4, 7부, 코스트카는 6부의 서술을 맡는데 특히 7부는 영화의 화면이 바뀌듯 세 인물의 서술이 교차된다. 각각의 인물들의 독백이 독자의 눈을 통해 맞춰지면서 각 인물들의 삶이 전체적으로 조명되는 기법을 사용했다.
루드빅는 열렬 공산당원이자 프라하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이다.
그는 학부의 한 여학생을 좋아하지만 무엇인가를 초월한 듯한 인상을 보여주려 때로는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을 '농담'처럼 내뱉곤 하였다.
그의 운명을 바꾼 여름방학 때, 그는 마르케타에게 농담으로 스탈린주의에 반하는 글을 적은 편지엽서를 그녀에게 보낸다.
이 농담과도 같은 한 마디로 인해 루드빅는 이제까지 순탄했던 인생의 항로를 바꾸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닥쳐온 자신의 운명을 조금은 우습게 여기기도 하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대학에서 퇴교 처분을 받고서 병역 연기의 특혜를 상실해 오지로 군복무를 하러 간다.
몇 년을 더해야 할지 기약도 없이 일종의 정치범을 의미하는 검은 배지를 달고서 의미 없는 노동만이 존재하는 삶에서 그는 루체란 여성을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된다. 루체는 그에게 구원의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고, 희망이었고, 절대적인 삶의 목적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뿐만 아니라 그녀의 육체까지도 원하던 그를 거부하면서 루체는 그의 곁을 떠나간다.
정해진 기간의 군복무와 탈영실패로 인해 몇 년 간의 강제노역을 더 하고서야 그는 다시 사회로 복귀하게 된다.
그는 다시 프라하에서 공부를 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제마네크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그 복수를 위해 자신의 고향 모라비아를 15년 만에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을 읽다보면 누가 이야기하는 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는 인물의 이름조차도 아무 설명도 없이 나오기 때문에 그들간의 연관관계도 전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도리어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모라비아에 돌아온 루드빅는 그의 지난 과거에 대한 회상과 앞으로 행해질 복수의 감정을 모두 드러낸다. 그는 자신을 파멸로 내몬 제마네크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내를 유혹하여 그에게 자신이 행한 응징을 드러내려고 이 곳에 온 것이다. 물론 프라하에서도 가능한 일이지만 그는 고향을 찾는다. 그것은 그가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향에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없애 버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처절한 복수극은 실패로 끝이 난다. 그가 침대 위에서 철저히 유린했던 헬레나, 그녀는 이미 그가 복수를 다짐했던 제마네크의 여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복수의 권리마저 박탈당하고 그는 우연히 제마네크를 만나지만 예전에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던 제마네크는 이미 과거의 그가 아니었다.
대학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는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에서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사상마저도 자연스럽게 바꾸어 버리고 있었다. 거기에다 자신의 제자인 여학생을 애인으로 두고 있는 그를 보면서 루드빅은 생각한다. 공산주의를 버렸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세상에서 내쫓겼던 자신과 자기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인 제마네크 역시 지금은 공산주의를 버렸다. 그러나 현실은 분명 달라졌고, 이런 아이러니에 루드빅은 다시 한번 절망을 느낀다. 15년 전의 여인이었던 루체, 여기 모라비아에서 다시 만난 그녀, 복잡해진 감정을 느끼면서 그는 옛 친구 야로슬라프와 함께 화해의 연주를 하고, 쓰러진 그의 손을 잡고서 앰뷸런스까지 부축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한 마디 농담에서 비롯된 인생의 비극과 그것을 바꿀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우리들 인생 자체가 즉 우리들의 존재가 너무나도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192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브르노(Brno)에서 태어나 그의 첫 저서 『농담』이 불역되는 즉시 프랑스에서 유명작가가 되었다. 『농담』과 『우스운 사랑』 2권만이 <쿤데라>가 고국 체코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2차 대전 후 그는 대학생, 노동자, 바의 피아니스트(그의 아버지는 이미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다)를 거쳐 문학과 영화에 몰두했다. 그는 시와 극작품들을 썼고 프라하의 고등 영화연구원에서 가르쳤다. 밀로스 포만(Milos Forman), 그리고 장차 체코의 누벨 바그계 영화인들이 될 사람들은 두루 그의 제자들이었다. 소련 침공과 '프라하의 봄' 무렵의 숙청으로 인하여 그의 처지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제거되었고 그 자신은 글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금지되는 역경을 만났다. 1975년 그가 체코를 떠나 프랑스로 왔을 때 "프라하에서 서양은 그들 스스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목도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으로 귀화한 밀란 쿤데라는 그의 고국에서 금지되었던 소설 작품의 창작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해학과 지성, 반어와 철학으로 가득 찬 그의 작품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 중 하나로 군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