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 문 학

새의 선물

[책갈피] 2005. 8. 10. 18:14
 

선물


<은희경>의 소설 『새의 선물』은 장르를 구분한다면  성장소설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새의 선물』은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1995년)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환멸의 학습을 통한 인간 성숙을 그

     린 뛰어난  성장소설이자 지난 연대 우리 사회

     의 세태를 실감나게 그린  재미있는  세태소설

     이란 호평을 받는 작품이다.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귀여운  간교함으

     로, 때로는  경쾌한  상상력으로 삶의  금기와

     규범체계, 사회의 지식 메커니즘 따위의 고정

     된 인식의 틀을 해체하는 삶의 모험적,도전적

     통찰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인생에 대한 냉

     소로부터 비롯된 시니컬한 시선이 갖가지 희극

    적인 삽화들 속에서 리얼하게 펼쳐지는 이 소설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밀스런 관계의 본질과 삶의 심연에 흐르는 위악적 경험의 비합리성이라는 무게 있는 주제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소설은 삼십대 중반을 넘긴 ‘나’가 1995년 무궁화호가 발사되는 광경을 보고서 아폴로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되던 1969년 열두 살(국민학교 5학년) 소녀시절을 회상해보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여섯 살에 어머니는 전쟁 통에 실성하여 목매어 자살했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외할머니 슬하에서 이모, 삼촌과 함께 생활하는 열두 살의 ‘나’는 “세상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 이 부분은 <귄터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남자 주인공 ‘오스카 마체라트’를 떠올리게 한다.

“나는 알 것을 다 알았고 내가 생각하기로는 더 이상 성숙할 것이 없었다.” 삶의 숨겨진 비밀을 다 알아버린, 남의 속내를 예리하게 간파해내는 조숙한 아이인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은 우물을 중심으로 하여 두 채의 살림집과 가게채로 이루어진 ‘감나무집’, 그리고 읍내의 ‘성안’과 도청소재지를 넘나드는 남도의 지방 소읍이 전부다. 그 공간에서 그는 각양의 군상들을 만나고, 그 군상들의 일상 속에 펼쳐지는 삶의 숨겨진 애증의 실체를 엿보거나 사람 사이의 허위를 들추어낸다.


그의 시선에 포착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지난 시절의 우리 이웃 같은, 미운 정, 고운 정으로 끈끈히 맺어진 살가운 사람들이다. 철없고 순수한 이모, 남편이 죽은 뒤 외아들을 떠받들고 사는 장군이엄마, 병역기피자이며 바람둥이인 광진테라아저씨와 착하고 인정 많은 광진테라아줌마, 신분상승을 위해 뭇 남성에게 교태를 부리는 미스리, 순정파인 깡패 홍기웅 그리고 완전한 헤어짐으로 사랑의 추억을 완성하는 ‘나’ 등 개개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으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약자들 이고 소외당한 자들이지만, ‘삶을 멀찌감치 두고 보려고 애쓰는 나’에 의해 그들의 일상을 감싸고 있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하나씩 복원된다. 그러한 따뜻함과 정겨움은 킥킥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갖가지 삶의 에피소드 속에서 드라마처럼 혹은 아름다운 풍경화처럼 펼쳐진 다. 그 웃음은 풋풋하다. 그러나 마냥 웃기만 하기에는 삶이 도저히 온전하지 못할 것 같은 상처의 내압과 잔인한 진지함이 또한 있다.


이 소설은 이처럼 묵직한 주제와 리얼리티를 내장하고 있으면서도 대단히 재미있다. 그것은 내밀한 삶의 속속들이를 다 알고 있는 이 소설의 화자인 열두살 계집아이의 당돌한 시선에 힘입고 있는 바 크다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화자를 돌본다고 여기고 있는 이모를 사실은 화자가 돌보고 있는 형국에 대한 묘사와 그 독특한 어조는 이 소설의 해학과 웃음의 근원이자 묘미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동생을 등에 업은 채 천방지축 팔방놀이를 하는 문제아적 소녀의 행동을 묘사하는 대목이나 ‘매사에 뒤에 처지기 때문에 하찮은 존재’였던 이선생님이 여호와의 증인이자 빨치산의 아내인 정여사 구출을 위해 화염 속으로 뛰어드는 순교의 장면과 그 후 정여사와 이선생님에 대한 간첩 혐의로 빚어지는 웃지 못할 풍자, 그리고 늘 가출을 꿈꾸면서도 버스가 떠난 다음에 먼지구름 속에 추연히 남아 있는 광진테라아줌마에 대한 묘사 등등 은 참으로 압권이다.


저자 은희경은 1959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숙명여대 국문과 및 연세대 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5년「동아일보」신춘문예 중편 부문에 『이중주』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로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면서 90년대 한국문학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1997년에는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제10회 동서문학상을, 1998년에는 『아내의 상자』로 제22회 이상문학상을, 2000년 단편소설 『내가 살았던 집』으로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그리고 최근에 출간된 『비밀과 거짓말』이 있으며,  소설집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