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문학

편집된 죽음

[책갈피] 2009. 11. 19. 09:09

편집된 죽음


 

 이 세상에 완전범죄는 가능한가? 우린 때때로 완전범죄를 꿈꾸면서도 일면의 어설픔 과 두려움 때문에 범죄를 망설이게 된다.  만약 완전범죄가 있다면 이런 식이 아닐까하는 전범을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편집된 죽음』이라는 소설이다. 스위스 출신 역사학자인 <장 자크 피슈테르>의 서스펜스 심리소설인 『편집된 죽음』은 1993년 프랑스범죄문학상 수상작으로 선과 악, 강자와 약자, 열등감과 우월의식 등의  모순을 주제로 하여 인간과 사회의 양면성을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묘사했다. 또한 이 소설은 사랑과 우정, 배신과 멸시 그리고 복수라는 고전적 소재들이 등장하는 범죄소설이란 평을 받았지만 지식인 사회의 치부를 짚은 풍자소설이면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기도 하다.

  

  

내성적인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만난 친구 니콜라 파브리에게 왠지 모르게 열등감을 느낀다.   에드워드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지하묘지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던 야스미나라는 아랍소녀마저 어느 부유한 백인가정의 가정부로 들어간 뒤 처참하게 살해됨으로써 이성과의 사랑에서도  '불구자' 가 된다.

 

훗날 영국의 출판업자가 된  에드워드는 외교관으로 또 작가로 명성을 쌓아가던 친구 니콜라를 진정으로  뒷바라지하면서도 늘  2인자로 남는데  대한 불만과 질투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프랑스 최고 문학상인 콩쿠르상이 니콜라에게 돌아가던 날 그 질투심은 범죄행위로 폭발한다. 니콜라의 수상작인 『사랑해야 한다』의 도입부가 바로 에드워드가 몇 십년 동안 잊지 못해 하던 야스미나의 죽음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이 작품을 읽고 니콜라가 지난 날 야스미나의 죽음과 관련됐음을 알아차린다.

 

에드워드는 니콜라의 콩쿠르 수상작을 '표절'로 몰기 위해 30년대 말의 종이·제본방법·풀·인쇄스타일까지 주도면밀하게 연구, 이집트로 가서 『사랑은 의무』라는 제목으로 몇 부를 찍는다. 그중 3권은 헌 책방의 서가에, 1권은 니콜라의 서재에, 1권은 니콜라에게 버림받았던 여류비평가 낸시 픽퍼드에게, 다른 1권은 「피플」지로 보낸다.

 

비평가 픽퍼드의 기사로 영국과 프랑스 문단은 벌집 쑤셔놓은 듯 왁자지껄했고, 니콜라가 영국법정에 명예훼손으로 픽퍼드를 제소했지만 『사랑은 의무』를 검증한 전문가들은 진품으로 결론을 내린다. 재기를 위해 브라질로 떠났던 니콜라가 파리로 돌아와서 책장을 정리하던 중 에드워드가 꽂아놓았던 『사랑은 의무』를 발견하고 자신이 무의식중 옛날에 읽었던 작품을 표절했다고 착각하고 자살함으로써 표절사건은 에드워드의 '완전범죄'로 끝난다.  이 소설은 표절이 만연하는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창작’과 ‘표절’이 어떻게 동전의 양면이 되어가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장 자크 피슈테르>는 전문가적인 역사학자로 스위스의 로잔 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쥘 게스드의 교조주의적 마르크시즘과 조레스의 인본주의적 대립에 방향을 맞춘 1914년 이전의 프랑스 사회주의 혁명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최근 몇 년 동안은 혁명기와 프랑스 제1제정 시기에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드레퓌스 사건에서 세계대전까지의 프랑스 사회주의』, 『혁명의 비망록』 등 10여권의 역사서가 있다. 역사학계에서 이미 신뢰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그는 이처럼 많은 저작물을 출판한 바 있으며 『편집된 죽음』은 소설로서는 그의 처녀작이면서도 프랑스와 스위스의 유수한 언론으로부터 한결같은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