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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물결[Une br`eve histoire de l'avenir]

[책갈피] 2007. 8. 20. 19:29
 

미래의 물결

[원제: 미래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Une br`eve histoire de l'avenir)]



자기 또는 자기가 속해있는 집단 ―가정, 회사, 사회, 국가, 크게는 세계(인류)― 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폭락하는 주가로 많은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더욱 간절한 소망으로 다가올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제사장이나 점성술사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려고 시도해왔다. 미래 예측에 대한 열망은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타임머신 등의 기구를 통해 표현되어 왔으나 아직은 꿈(공상)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기업경영이나 상품투자와 관련하여 미래의 흐름이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이런 흐름과 관련하여 미래학이 현실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식, 정보, 기술의 홍수 속에서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경영컨설턴트 <윌리엄 A 서든>은 “엉터리 예측에 목을 매느니 차라리 동전을 던져라.”라고 미래학자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그는 미래학자들이야말로 동전을 던지는 것보다 못한 50% 이하의 적중률로 뭇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예언가들이라고 매섭게 몰아친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잘못된 미래예측이라도 이는 인류를 재난으로부터 구조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반론을 펴는 용감한 문명사학자도 있다. 『총·균·쇠』, 『문명의 붕괴』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바로 그다.


<자크 아탈리>가 쓴 『미래의 물결』[원제: 미래에 대한 짤막한 이야기(Une br`eve histoire de l'avenir)]은 원제목과는 달리 짤막한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4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분량으로 단숨에 읽어 내리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다른 미래 예측서와 같이 딱딱하지도 않으며 술술 익히는 편에 속한다.

<아탈리>는 인문학, 경제학, 정치학, 문학, 철학, 공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과 깊고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의 변화를 예측한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 보자고 주장하며,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흐름을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먼저 노마디즘, 식인 풍습, 성생활, 제례의식, 제국시대 등을 주제로 지나간 인류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한 다음, 자본주의에 관해 시대별로 정리하였다. 기존 역사서들이 왕이나 제국의 흥망성쇠를 선호한 반면 저자는 세계 경제사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9개의 ‘거점’ 도시(브루게, 베네치아, 앤트워프, 제노바, 암스테르담, 런던, 보스턴, 뉴욕, 캘리포니아)의 흥망사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반추한다.  9개의 거점 도시는 작지만 내부에 폭발적인 에너지와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간직한 공간이었다고 진단한다. 자유와 경제적 풍요가 보장된 이들 도시에는 예술가, 학자, 법률가, 장인 등이 모여들고 군사 경제 문화의 도시로 성장해 세계의 중심지가 됐다.  ‘거점’으로 성장하려면 배후에 농업생산이 가능한 광활한 농토와 거대 항구, 축적된 자본이 필요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도시의 정신이었다고 아탈리는 말한다. 그가 말하는 도시의 정신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첫째, 부족함을 느끼는 정신이다. 저자는 결핍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새로운 부를 찾아 나서게 만드는 원동력이며 부족함을 메우는 과정에서 역사는 진보한다고 강조한다.  지속적으로 해변의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항구 기능이 어려웠던 브루게가 세계적 항구로 발전한 것이나 ‘거점’의 후보였던 중국의 항구들이 풍족한 식량 때문에 교역을 외면하며 기회를 놓쳤던 것을 예로 든다.


둘째, 신기술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문화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런던을 세계적 ‘거점’으로 성장시킨 증기기관은 프랑스가 원조였고 베네치아를 지중해 경제의 중심으로 만든 회계 보험 제도는 제노바와 피렌체로부터 가져온 것이었다.


셋째, 외부의 엘리트를 받아들이는 개방 정신이다.  막대한 대서양 무역으로 쉽게 거점이 될 수 있었던 스페인과 프랑스의 도시들이 주저앉았던 이유는 외부에서 온 유대인과 신교도들을 쫓아내 인력풀을 넓히지 못한 데 있었다. 네덜란드에서 활약한 철학자 스피노자의 선조는 스페인에서 쫓겨난 유대인이었고 17~18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중흥을 이끈 자본가들은 프랑스에서 쫓겨난 신교도들이었다.


그러나 ‘거점’은 영원할 수 없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거점’의 산업은 수익성이 떨어지고 거점 유지를 위한 자본 부족에 시달리며 사회 불평등이 가속화된다. 여기에 평화 유지와 외부의 적을 방어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지출될 때 ‘거점’은 여지없이 쇠락했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는 현재의 ‘거점’ 도시 로스앤젤레스를 갖고 있는 미국은 이라크전쟁을 비롯한 대테러전쟁 비용으로 머지않아 세계의 패자에서 내려올 단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그는 2025년 무렵, 미국이 제국으로서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다고 예측한 다음, 소위 '일레븐'이라고 불리는 11대 강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다중심적 체제’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한다.  '일레븐'이란 한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를 지칭한다.

아울러 사회는 '하이퍼 제국‘을 거쳐 ’하이퍼 분쟁‘이 이어지다가 결국은 ’하이퍼 민주주의'로 미래가 변할 것이라며 각각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이를 통해 나노 측량 신기술, 스스로의 고용을 점검하는 자율 감시 체제, 첨단 신무기, 석유와 물의 희소성으로 인한 분쟁, 보편적이고 박애의 정신을 지닌 새로운 민주주의의 힘 등 미래에 있을 다양한 일을 간접경험 할 수 있다. 

 

 

 

<아탈리>가 그리는 미래는 이렇다.  시장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유일한 법으로 등극하여, 포착 불가능하고 전 지구적이며, 상업적 부와 새로운 소외현상들, 극도의 부와 극도의 빈곤을 만들어낼 ‘하이퍼 제국(hyper empire)’을 형성할 것이며, 그런 세상이 오면 자연은 체계적으로 초토화된다. 모든 것, 심지어 군대와 경찰, 사법체계조차도 민영화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인간 존재는 대량생산 가능한 소비재인 보철장치들에 에워싸여 인위적 가공물을 자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의 창조성을 잃어버린 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인류가 이전 시대의 소외현상들로부터 채 벗어나기도 전에 미래 앞에서 주저앉거나 세계화의 흐름을 폭력으로 끊어 버린다면, 인류는 퇴행적 야만과 파괴적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때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무기들이 동원된 가운데 국가나 종교단체, 테러집단, 해적들이 서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게 저자가 ‘하이퍼 분쟁(hyper conflict)’이라고 지칭하는 국면이다.  이 하이퍼 분쟁으로 인해 인류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음을 저자는 경고한다.

마지막으로, 세계화가 완전히 거부당하지 않으면서 적당한 선에서 절제되고, 시장이 비교적 순탄하게 유지되며, 민주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활성화될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하나의 제국에 의해 통치되는 일이 멈춘다면, 그때는 자유와 책임, 존엄성, 극기, 타인 존중 등의 새로운 무한성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이게 저자가 말하는 ‘하이퍼 민주주의(hyper democracy)’ 라는 국면이다. 하이퍼 민주주의가 도래하면 전 지구적 규모의 민주정부와 일체의 국지적.지역적 제도가 정착하게 된다. 개개인은 새롭게 찾아올 과학기술의 경이로운 잠재력에 의해 재창출되는 일자리를 통해서 무상 혜택과 풍요로움을 향해 나아가게 되고, 상업적 상상력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공평하게 누리며, 방종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내고, 후손들에게 보다 잘 보전된 환경을 물려주고, 세상의 모든 지혜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나서는 동시에 창조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하이퍼 민주주의 시대의 전위부대는 아탈리가 새로이 개념화한 ‘트랜스휴먼’과 ‘관계 위주의 기업’이다.  ‘트랜스휴먼’은 남을 돕고 이해하며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세계를 물려주려고 애쓰는 이타적인 지구시민이다. 트랜스휴먼들은 상업적 혁신뿐만 아니라 사회·예술적 혁신을 이끌어 가는 ‘창조적 계급’을 형성한다.  트랜스휴먼들은 미래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시대의 운명과 후손의 운명까지 깊이 고심하는 인간으로서, 이들은 정착민의 덕목인 민첩함, 친절, 장기적인 안목과, 유목민의 덕목인 끈기, 기억력, 직관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트랜스휴먼’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에 의해 운영되는 ‘관계위주의 기업’은 이익에만 연연하지 않으면서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관계의 경제’ 활동을 펴나간다.


저자는 한국에 대해 전망하면서 다음과 같은 충고도 빼놓지 않았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있는 상황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는 한국이 세 나라를 묶는 북아시아공동시장을 주도해 만든다면 미래 중심국가로 부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선 △실질적 출산휴가를 보장해주는 가족정책의 개혁 △수업의 양을 줄이고 노동시장의 현실과 세계표준에 부합하는 방향으로의 교육 개혁 △외국인 인재들에게 국경을 개방하는 이민정책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향후 한국이 안전한 상태에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가 빚어놓은 갈등, 즉 북한과의 관계를 해결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북한문제로 말미암아 남북간 무력충돌이 벌어지거나 북한의 몰락으로 한국에 극심한 혼란이 찾아온다면, 이것이 한국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그리고 한국의 장래는?   과연 저자가 말하는 바 대로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길게 남아있지 않은 내 생애 중에는 확인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탈리가 또 한사람의 거짓말쟁이로 전락할지를 확인하는 일은 새천년동이들의 몫이 될 것이다.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아탈리는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공학을, 에콜 드 민에서 토목공학을, 시앙스포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최고 지도자 양성소인 ENA(국립행정학교)를 거쳐 1972년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까지 에콜 폴리테크닉과 파리 9대학, 소르본 대학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며 1974년에 미테랑 당시 사회당 당수의 경제 고문으로 현실 정치에 참여한다.

1981년 사회당 정부의 집권 이후 1991년까지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 보좌관을 역임하고,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공산권 붕괴 이후 동구의 경제 재건을 위해 창설된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초대 총재직을 맡아 유럽연합의 실현에 기여했다. 2005년 현재는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아소시에' 사 대표 겸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으로 창설된 플래닛 뱅크 총재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소리:음악의 정치경제학』, 『지혜에 이르는 길 - 미로』, 『밀레니움 - 변화하는 세계 질서의 승자와 패자』, 『영생』, 『카니발의 질서』, 『새로운 프랑스 경제학』, 『인간적인 길』, 『21세기 사전』,  『합리적인 미치광이』, 『호모노마드:유목하는 인간』,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40여 권이 넘는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