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문학

알라무트[Alamut]

[책갈피] 2007. 5. 9. 10:27

 알라무트[Alamut] 


 

해발 2000m 바위산 꼭대기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 ‘알라무트’.   알라무트는 이란 테헤란에서 서북방향으로 150km 떨어진 카즈빈(Qazwin)시 부근의 엘부르즈(Alburz)산맥에 위치한 성채로, 카스피 해와 페르시아 고원사이의 험로와 연결되어 있는 경사가 60도 가량의 가파른 바위산으로, 뒤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며 사방이 훤히 트여있다.  

11세기말에 이스마일파의 수장인 <하산 이븐 사바>에 의해 건설된 이 요새는 166년 동안 인류 역사상 가장 가공할 만한 암살단의 본거지로 위세를 떨쳤다.  1256년 본격적인 서방원정을 위해 이슬람세계의 수도 바그다드로 향하던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는 이 암살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닥쳤다.  그러나 훌라구는 암살자교단 내부의 갈등을 이용한 회유책으로 이 험한 성채를 함락, 철저히 파괴한다.  함락 당시 알라무트 성채에서  하산 이브 사바 시대부터 저장되어 있던  비축식량이 고스란히 보존된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1만2천여 권의 필사본이 소장된 도서관은 7일 밤낮 동안 타올랐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알라무트 전경]


레바논 출신 작가로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민 말루프>는 그의 저서 『사마르칸드』에서 알라무트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알라무트.  해발 6천 피트 바위산 꼭대기의 요새, 민둥산과 잊혀진 호수, 가파른 절벽과 협곡. 아무리 많은 병사를 이끌고 온 군대라 해도 한 명의 병사도 접근 시키지 못할 것 같다. 고성능 대포를 쏘아 올려도 요새의 성벽까지는 미치지 못할 것 같다.  산과 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미친 강’이란 별명이 붙은 샤흐루드 강은 엘부르즈 산의 눈이 녹는 봄에는 강물이 불고, 주변의 나무와 바위들을 뿌리 채 뽑아버릴 정도로 물살이 거세다.  멋모르고 접근 했다간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고, 어떤 군대도 감히 그 기슭에 진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다.

저녁마다 강과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안개가 절벽을 따라 오르다 구름처럼 걸려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난다.  알라무트는 지방사투리로 ‘독수리의 교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 산악지대를 지배하기 위해 요새를 세우고 싶었던 한 왕자가 길들인 독수리 한 마리를 이곳에 놓아 주었다고 한다. 하늘을 선회하던 독수리가 꼭대기의 바위에 날아가 앉는 것을 보고 이곳이야말로 최고의 장소임을 깨달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또 이 책에서는 11세기 페르시아의 대시인이며 철학자요, 수학자이며 동시에 천문학자인 ‘오마르 하이얌’,   페르시아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명재상 ‘니잠 엘무크’와 암살단의 창시자인 ‘하산 이븐 사하’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그리고 있으며  ‘하산 이븐 사하’가 알라무트 요새를 구축한 내력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또, 우리에게 『영웅문(사조영웅전)』의 작가로 알려진 <김용>의 『의천도룡기』라는 소설 속에서도 이 알라무트에 대한 전설이 언급되고 있다. 

 

[오마르 하이얌의 초상]


그러나 알라무트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통해서다.  1273년 페르시아지방을 지나간 마르코 폴로는 이곳에서 전해져 오던 암살자단과 그들의 우두머리였던 「산상(山上)의 노인」 ‘하산 벤 사바’에 관한 이야기를 『동방견문록』에 소개했다. 노인은 이 산 계곡에 포도주와 꿀과 우유가 흐르고 아리따운 여인들이 있는 궁전과 정원을 만들어놓고 젊은이들을 ‘하시시’라는 대마초를 먹여 이곳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즐겁게 지낸 청년들은 적국의 요인을 암살하고 돌아오면 다시 「천상의 낙원」으로 데려다 주겠다는 노인의 꾐에 빠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령을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산상의 노인]


<블라디미르 바르톨>의 『알라무트』는 세계 최초 이슬람 테러리즘과 자살특공대의 창시자인 11세기 이스마일파의 수장 하산 이븐 사바가 조직한 암살단을 모티프로 한 이야기로, 그가 자신만의 절대 왕국을 건설하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린 정치역사소설로 이슬람 종교사를 연구해온 슬로베니아 태생 작가가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한 소설이다.


젊은 시절, 진리를 찾아 헤맸던 하산은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접한다. 그 후 그를 지배한 논리는 이렇다. “우리는 진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를 위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실행해야 하는 것인가?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은 뭐든지 마음대로 해도 되고, 불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열정에 전념할 수 있다.” 그는 이어 “지도자들이 민중에게 진리를 감추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으며, 이기적인 동기로 군중을 잘못 속에 가두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가 선택한 길은 민중을 그 우매함에서 탈출시키려는 노력이 아니라, 이용하는 길이었다.

하산은 정예 요원으로 선발된 젊은이들에게 해시시를 먹인다. 오늘날 '어쌔신(암살자)'의 어원이 되기도 한 해시시의 효력이 온몸에 퍼지면서 젊은이들은 '천국'으로의 욕망과 애욕으로 들끓기 시작한다. 천국의 미녀들과 달콤하고 짜릿한 육체적 쾌락을 경험한 그들은 이제 목숨도 두렵지 않은, 오히려 죽음을 갈망하며 천국으로 다시 들어가기만을 꿈꾸는 정예 암살단으로 개조된다.  소설은 천혜의 요새 알라무트 성 꼭대기에서 절대 권력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펼치는 하산 이븐 사바의 전대미문의 술책과 잔혹하고도 극악무도한 독재자의 광기가 11세기 이란의 광활한 고원과 협곡을 배경으로 장쾌하게 펼친다.



작가인 <바르톨>은 치밀하게 직조한 가상의 역사 뒤에 현대 정치 현실을 묘사하는 위장술을 씀으로써, 독재자의 메커니즘과 정치적 독단, 종교적 광신의 모순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절대 권력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한 하산 이븐 사바의 술책과 독재자의 광기를 통해 인간의 냉혹함과 잔악무도함을 고발하고 선과 악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슬로베니아어라는 소수언어의 장벽과, 파시즘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무려 반세기라는 긴 세월 동안 구석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슬람권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모든 독재체제의 핵심을 건드렸기 때문에 햇빛을 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작품은 바르톨이 사망한 지 20년이 지난 1980년대에 18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어렵게 다시 출판된 이 책은, 이제 하산 이븐 사바라는 독재자를 통해 전체주의 정신을 세밀하게 분석했다는 평가를 넘어, 오늘날 알카에다, 헤즈볼라, 무자헤딘 등 이슬람 테러리즘의 시원까지 밝혀내고 있다.  하산 이븐 사바가 운용했던 자살특공대의 모양새는 놀랍게도 21세기의 현장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들의 행위는 어떻게 미화하더라도 종교적 광신이 빚어낸 범죄행위임에는 분명하다.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범죄행위의 면죄부는 도대체 누가 부여하는 것일까?  이들이 목숨을 내걸고 테러를 서슴지 않게 감행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그 비결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음을 갈망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생을 본능적으로 갈망하는 인간의 유전자를 어떻게 그러한 신념으로 무장시키느냐의 문제가 더 궁금한 비결이다.


[블라디미르 바르톨(Vladimir Bartol)]

1903년 슬로베니아의 트리에스터에서 태어났으며, 1926년부터 파리에서 생물학과 프로이트 심리학을 공부했다. 니체 번역가로 활동했고 이슬람 종교사를 연구하면서 1938년 '알라무트'를 출판했으나 외면 받았다. 1967년 바르톨이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에서 사망 후 20년이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된 『알라무트』는, 종교적 광신에 관한 정치역사소설이자 모험소설로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18개 국어로 번역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