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라틴문학

미로(迷路) 속의 장군

[책갈피] 2006. 12. 13. 16:31

 

미로(迷路) 속의 장군



G. G. 마르케스

 

 

그는 링컨보다 46년 앞서 노예해방을 이뤄냈고 알프스 산맥을 넘은 한니발처럼 안데스 산맥을 넘어 페루의 스페인군을 물리쳤다. 한니발의 군대는 로마에 졌지만 그는 결국 승리를 이뤄냈다. 베네수엘라 독립운동에 실패한 뒤 아이티에서 다시 베네수엘라로 출발할 때 그가 가진 것은 이순신 장군의 12척보다 적은 7척의 배와 250명의 군사뿐이었다.


‘해방자(El Liberator)’로 모든 남미인의 추앙을 받는 시몬 볼리바르. 그는 1783년 스페인 식민 지배하의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났다. 백인 귀족이라는 선택받은 신분이었지만 당시 남미에는 본국에서 파견된 백인과 식민지에서 태어난 ‘열등한’ 백인 사이에 차별이 엄존했다.

스승 시몬 로드리게스에게서 장 자크 루소의 계몽사상을 받아들인 그는 1811년 베네수엘라 임시정부를 세우는 작업에 투신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네 차례나 망명과 귀국을 거듭한 끝에 1819년 뉴그라나다(콜롬비아)를, 1821년 베네수엘라를, 1822년 키토(에콰도르)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세 지역을 통합해 ‘대콜롬비아 공화국’을 수립했다. 1824년에는 페루를, 1825년에는 볼리비아를 해방시켰다. 오늘날 무려 다섯 개 나라의 국부(國父)로 숭앙되는 이유다.

그는 탁월한 정치 사상가이자 예언자이기도 했다. 그는 해방된 남미가 조각날 가능성을 항상 염려했다. 뻗어 나가는 미국의 국력을 감안할 때 남미의 분열은 결국 미국에 대한 종속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뻔히 내다보이는 분열을 결국은 막을 수 없었던 데 그가 가진 비극성이 있었다.

각 지역의 분리 독립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반란세력을 제압하지 못한 그는 결국 1830년에 대콜롬비아 공화국 대통령 직을 내놓고 여행길에 올랐다. 그해 12월 17일 그의 병사(病死)는 너무도 이르고 갑작스러웠다. 실의가 컸던 탓일 것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남미 각국의 광장과 기념물에 남아 있다. 볼리비아는 국호(國號)로, 베네수엘라는 ‘볼리바르’라는 통화 명칭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

 

 

 

1830년 5월 8일, 남미의 ‘위대한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장군은 병든 몸을 이끌고 몇 안 되는 수행원들과 함께 콜롬비아 공화국의 수도 보고타를 떠난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17일, 막달레나 강변의 작은 마을 ‘산 페드로 알레히드리노’에서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G.G. 마르케스>의 『미로 속의 장군』은 시몬 볼리바르 장군의 이 마지막 여행을 그린 작품이다.『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신화적 사실주의를 보여주었던 마르케스는 이 작품에서도 막달레나 강을 따라 진행된 볼리바르 장군의 과거와 현재, 그의 꿈과 좌절을 용해시켜 신비스러운 비애를 느끼게 하고 있다.

 

볼리바르장군의 일생과 불행한 최후에 대한 암시는 우선 이 소설 첫 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타난다.

“시몬 호세 안토니오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볼리바르 이 팔라시오스(Simon Jose Antonio de la Santisima Trinidad  Bolivar y Palacios)는 영원히 떠났다.

 ※ 그가 해방시켰던 지역의 광대함 만큼이나 이름도 거창하다.

그는 유럽 대륙보다 다섯 배나 되는 광활한 나라를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자유와 통일을 지키기 위해 20여년간의 전쟁을 지휘했으며 지난 주까지 굳건한 손으로 그 나라를 통치했었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에 장군은 의지할만한 어떤 위안도 가져가지 못했다.  유일하게 그가 실제로 떠나는지, 그리고 어디로 떠나는지를 알만큼 명석한 사람은 자기 정부에 다음과 같은 공식적인 보고서를 보낸 영국 외교관 한사람이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이라고는 겨우 자신의 무덤에 도착할 정도의 시간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남미의 통일이 아니라 분리를 주장하며 권력을 다투고 자신을 비난하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대통령 직을 떠난 볼리바르 장군은 자신의 몸에 병(폐결핵)이 퍼져가는 것과 같은 속도로 ‘자유롭고 통일된 하나의 국가’라는 자신의 꿈이 붕괴해가는 것을 느낀다.  병마가 선사한 열기로 인한 환상 속에서 그는 전쟁의 승리, 여인들과 나누었던 사랑의 추억 등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언제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절망이었다.


부유한 시골 귀족의 후예로 태어나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영지관리에만 몰두하다가 아내가 세상을 떠난뒤 남미 독립운동에 투신한 볼리바르 장군. 그는 현재의 볼리비아, 콜롬비아, 에콰도르, 파나마, 페루, 베네수엘라에 걸치는 광대한 지역을 독립시켰지만 그 업적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최후를 마쳤다.

“내가 그렇게도 나빠졌단 말인가?  어떻게 이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세상을 떠나기 1주일 전에 그가 마지막으로 토해낸 회한의 말이었다.